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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과의사의 취미생활
글_류상효(해동병원)


1.간단한 자기소개 부탁 드립니다.


장동건이 주연한 영화 “친구”의 소재가 된 부산 칠성파의 본거지로 알려진 영도다리가 있는 섬! 송강호 주연의 “변호인”에서 국밥집을 운영한 김영애씨의 집을 촬영한 흰여울문화마을과 멋들어진 해변바위를 품은 태종대가 숨쉬는 섬, 바로 “영도”에 위치한 해동병원(냉동병원 아님)에서 신경과장으로 근무하는 류상효 입니다.



2. 영어 관련 책, 라디오 활동을 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자세히 설명 부탁 드립니다.


인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휴가라고 알려진 공중보건의 시절, ‘어떻게 하면, 알차고 보람되게 이 휴가를 보낼 수 있을까?’ 라는 스스로의 질문에 대한 답으로 ‘그래! 영어공부에 한번 매진해 보자!’ 라고 마음을 먹고 영어 공부를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공중보건의사로 근무한 지역은 전라남도 영광군 영광읍 이었는데, 근처에 변변한 영어학원 하나 없는 시골이었죠. 그런 가운데 의지할 곳은 인터넷 방송 혹은 라디오 방송이었습니다. 아침 회진을 돌고 EBS를 틀어보니 방송되는 프로가 바로 ‘모닝스페셜’이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20년 가까이 변함없이 방송되는 EBS 간판 프로 중 하나로 매주 월요일~토요일, 오전 8시 ~ 10시까지 2시간 동안 특별한 교재가 없이 그날그날의 뉴스나 사건들을 이야기해주고, 그 뉴스 속에 포함된 표현들을 정리해서 가르쳐 주는 생방송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공중보건의 시절 일과는, 4주간의 군사기초훈련으로 습관화된 기상시간 6시에 눈을 뜹니다. 눈을 뜸과 동시에 머리 위에 있는 오디오로 전날 공부하면서 녹음한 mp3 파일을 스피커를 크게 틀면서 일어나 샤워를 하고 출근준비를 합니다. 옷을 챙겨 입고, 녹음한 내용을 소형 mp3에 담아 이어폰으로 그 내용을 들으면서 병원식당으로 갑니다. 굴비로 유명한 영광군 영광읍의 한 병원식당에서 남도의 맛깔 난 아침을 먹고 진료실로 들어가서 컴퓨터를 켠 후, EBS홈페이지 들어가서, On Air를 켜서 라디오 방송을 청취합니다. G로 시작되는 컴퓨터 녹음기를 키고, 방송을 들으면서, 녹음을 합니다. 9시경 방송이 끝나면 회진을 돌고 진료실로 다시 들어와서 환자가 없는 시간 틈틈이 퇴근할 때까지 영어공부를 했습니다.


그 당시 ‘모닝스페셜’ 방송의 구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8시 땡 소리와 함께 음악소리가 들리고 그 소리 가운데 진행자의 opening ment가 나옵니다. 그 다음엔 진행자와 부진행자 사이에 서로 안부를 묻는 대화를 약 5분 간 나눈 뒤, 매일 아침 게시판에 올라온 그날그날의 따끈한 뉴스 내용들을 이야기하고, 그 속에 들어 있는 영어 표현을 가르쳐 주죠.


그러던 어느 날, 저는 어떤 사람들이 방송을 듣고, 어떤 사람들이 게시판에 글을 남기는지 방송 게시판에 올라오는 글이 궁금했습니다. 게시판 글 중 제 눈을 사로 잡는 것이 바로 받아쓰기(dictation)였습니다. 애청자 중 한 명이 뉴스 본문 들어가기 전, 방송진행자간에 서로 주고 받는 약 5분간 대화 내용을 받아 적기 해서 올려 놓은 것이었는데, 아무리 들어도 들리지 않던 그들만의 대화내용이 보여지는 순간 마치 시험지의 모범답안을 훔쳐 보는 듯한 희열을 느끼면서 그들의 대화에 간접적으로나마 동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저를 실망하게 만드는 것이 있었는데, 그들이 사용하는 단어가 중학생 수준의 단어였고, 그런 단어들이 제 귀에는 들리지 않는 다는 사실이였습니다. 그러던 중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 그래? 그럼 나도 한번 받아쓰기 해볼까? 이렇게 쉬운 단어인데?’


그렇게 해서 방송의 첫 5분간 방송진행자들이 하는 대화 내용을 받아 적어 보기로 했습니다. 컴퓨터 미디어 재생기로 듣고 또 듣고, 되든 안 되는 그냥 들리는 대로 적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5분의 받아 적기는 약 2시간 정도 걸렸어요. 단 5분의 대화 내용을 받아 적는데, 2시간이 넘게 걸렸고, 그렇게 받아 적은 내용을 게시판에 올렸습니다. 몇몇의 청취자들이 제가 받아 적은 내용들을 수정해 해주기도 하고, 안 들렸던 부분을 가르쳐 주기도하고, 또한 칭찬과 격려를 해주기도 했습니다. 점점 자신감을 얻어 몇 개월 후에는 약 30분 가량의 잡담 및 뉴스 내용들을 받아 적을 수 있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약 5시간 정도 걸리던 작업이, 3년 동안 거의 매일 하다 보니 어느새 받아쓰기 속도에 가속도가 붙어서 공보의 전역을 할 때 즈음에는 처음으로 약 30 분 동안 방송되는 진행자들의 모든 대화 및 뉴스 내용을 2시간 정도의 시간 안에 받아 적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공중보건의 복무를 마치고 난 뒤 서울로 가서, 전임의를 할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가정형편상 그리고 기타 여러 이유로 봉직의로 취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봉직의로 근무하게 된 곳은 다름아니라 제가 공중보건의로 근무한 바로 그 병원이었습니다. 가족들이 있는 서울로 가길 원했지만, 영광군 영광읍 호연재단의 영광종합병원에서 저에게 파격적인 대우를 해주어서 차마 옮길 수가 없었습니다. 공중보건의사로서 신경과가 병원에 처음으로 개설되었고, 환자도 늘고 점점 병원의 규모도 커져가게 되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병원 재단에서는 광주에 또 다른 종합병원을 개원하였고, 새로 개원한 병원을 살리고자 그곳으로 발령 나게 되어 광주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개원한지 얼마 되지 않은 병원이어서 홍보가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어느 날 병원 홍보팀에서 광주영어방송에 가서 홍보를 하자는 제안이 들어 왔습니다. 영어를 좋아하던 저는 흔쾌히 이를 수락하였고, 난생 처음으로 라디오 방송국에 가서 영어로 병원 홍보를 녹음하고 오는 길에 방송 부장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의학코너를 하나 하려는데, 정기적으로 나와보지

않겠나?

           

‘일단 저지르고 보자’는 성격에 저는 흔쾌히 ‘네’라고 답하고 바로 방송에 출연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녹음 방송이어서, 하다가 혀가 꼬이거나, 머뭇거리면 편집을 해서 방송을 해주었습니다. 실수가 많았고, 발음도 이상해서, 편집하시는 분이 많이 힘들었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방송도 익숙해 지게 되었고, 손발이 오그라드는 창피한 나의 목소리와 발음을 방송으로 들을 수 있어서 영어의 발음도 함께 교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약 3년 뒤 개인사정상 부산으로 이사를 온 뒤 부산영어방송국과 연결이 되어서 다시 방송을 할 기회가 생겼는데, 생방송으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언젠가부터 많은 사람들로부터 “어디 유학 다녀왔어요?” 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될 정도가 되었고, 영어로 편하게 의사소통이 된다는 이유로 멀리서 찾아오는 외국인 환자들, 그리고 지금도 정기적으로 오는 외국인 환자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영어 공부를 하면서, 책을 펴게 된 이유는 우리나라 영어 교육에 어마어마한 돈이 사용되고 있으며, 그만큼의 효과를 못보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경제도 갈수록 빈부간의 격차가 켜지고, 학생들의 교육도 그 편차가 커져, 올해 5월 통계청에 발표된 바에 의하면, 고소득가구의 학원비가 빈곤층의 27배라는 현실 속에서, 청소년들 사이에는 수포자(수학 포기자), 영포자(영어포기자)가 생기기도 하고 이를 볼 때 참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특히 영어에 대해서는 뭔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지금의 수능 영어문제를 보면, 진짜 황당하고 ‘이게 영어인가?’ 라는 반문을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 제가 독학으로 영어 공부를 하면서 느낀 점은 우리가 학창시절에 배운 영어공부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거였습니다. 아니! 방금 한 말을 정정 하면, (I take that back)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외국어 습득 (second language acquisition) 에 대해 공부를 하게 되었고,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언어학 교수 중 한 명의 외국어 습득에 대한 연구에 의하면, 외국어를 가장 잘 배우고 습득하는 시기는 청소년시기이고, 그 다음이 바로 청소년기를 지난 성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점에 대해서, 제가 배운 신경학적 지식과 접목하여 누구나 열심히 하면, 원어민만큼의 영어구사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또한 왜! 독해 공부와 문법공부가 영어공부에 있어서 독이 되는지 부족하지만, 제가 배우고 공부한 신경학적 지식을 접목하여 해석해 보려 했고 이를 책으로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1.  Perspectives on Second-Language Development: Implications for Bilingual Education Catherine E. Snow Vol. 21, No. 2, Special Issue on Bilingual Education (Mar., 1992), pp.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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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부터, 지금까지 구독하고 있는 EBS 중급영어회화 POWER ENG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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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영어방송 City of light 진행자 Joe Kim
(현재 아리랑 방송 Wonders of Jeju 진행자)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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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 저를 보러온
Joe Kim과 함께 저녁 식사 후

           

3. 영어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으신지요.


중학교 시절 제가 살던 아파트 아래층에 한 외국인 엄마와 아이가 이사를 왔는데, 8살 정도의 백인 아이로 기억합니다. 그 당시는 80년대 중반이라, 외국인을 길거리에서 마주친다는 것은 요즘처럼 흔하지 않아, 놀이터에서 그 아이가 오면 많은 아이들이 몰려와서 신기한 듯이 그 아이를 쳐다보기 일쑤였고, 심지어는 F로 시작하는 욕을 그 아이에게 해보라고 하기까지 했습니다. 저는 속으로이건 아닌데라며 그 아이에게 다가가 친구가 되고 싶었지만, 그 아이를 만날 때 마다 위로의 말이나, 친구가 되려는 말은 해보지도 못하고 몇 개월 뒤 그 아이는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 저에게는 두고 두고 그 아이에게 다가가 말 한마디 못하고 친구가 되어주지 못한 미안함이 마음 속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6등급의 내신성적표를 들고 (당시 12등급제) 6번째의 도전 끝에 한림대학교(후기대학)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어려운 환경에 더욱 열심히 공부를 하고 성적 장학금을 받아야 했지만, 능력 부족이었는지 혹은 노력 부족이었는지 그러지는 못하여,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주어지는 생활보호장학금의 도움과 파출부를 하시는 어머니의 뒷바라지로 대학을 다녔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부러운 것이 하나 있다면, 친구들이 방학 중 어학연수를 가거나, 혹은 배낭여행을 가는 것이었습니다. 간혹 외국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의과대학에 입학한 후배들을 보면, 그들의 영어 능력이 신기하고 부럽기도 했습니다.

 한 날은 극장에서 Bruce Willis 주연의 “Die Hard”영화를 보는데, 옆에 앉은 미군들이 전혀 재미있지도 않아 보이는 영화 대화나 장면에서 깔깔대고 웃으면 보는데,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아 저들이 느끼는 그런 유머를 다 이해하고 영화를 보면 얼마나 재미 있을까?’

‘과연 나는 외국에서 유학한 아이들이나, 교포처럼 영어를 할 수 없단 말인가?’

           

4. 영어가 두려운 여러 신경과 의사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지요


외국인들은 우락부락하고 털도 많아 좀 많이 늙어 보이지만, 전혀 겁먹지 말았으면 합니다.

건축학을 하는 한 초등학교 동창은, 한국에서 대학을 나와 현재 미국의 신시내티 주립대학교 건축과 교수로 근무하면서, 한국에서는 건축사무소를 운영하는 친구인데, 어느 날 그 친구와 영도의 한 식당에서 식사를 하면서 나눈 대화가 있었습니다. 처음에 미국에 갔을 때 사람들이 덩치도 크고 나이도 들어 보여 무서웠는데, 몇 개월간 학생들을 가르치고 지도해 보니 생긴 것은 늙어 보여도, 우리나라 스무 살 갓 넘은 학생들과 하는 짓이나 생각들이 똑같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영어공부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영어는 단지 의사소통의 수단임을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방금 말씀 드린 건축과 교수인 친구는 영어를 잘 못합니다. 발음은 물론 SNS에 올리는 글을 보면, 문법적으로 틀린 것도 많고, 언제나 저에게 영어는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을 하는 친구입니다. 하지만, 매년 학생들이 평가하는 교수 평가에서 언제나 월등한 최고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저 또한 외국인과 대화를 하다 보면, 그들은 나의 발음, 나의 문법적 실수에 전혀 신경 쓰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에만 관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발음과 문법이 틀렸다고 뭐라고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전혀 신경도 안 쓰며, 말하고자 하는 내용에만 관심이 있다는 사실, 즉 언어로서의 본연의 기능(의사소통)을 염두 해두고 배우는 자세가 바로 영어습득 혹은 외국어 습득의 기본적 태도라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5. 향후 집필 계획은 있으신지요.


“문법이 죽어야 영어가 산다.”라는 제목으로 글을 써보고 싶습니다. 2013년 우리나라에 처음 출간된 “크라센의 읽기 혁명 (The power of reading)”의 저자인 스티븐 크라센(Stephen Krashen)은 현재 외국어 습득의 기본적 가설의 근간을 마련한 세계 최고의 언어학자 중 한 명입니다. 그는 과거 모든 언어 습득은 완벽한 문법의 습득에서 시작된다고 믿은 문법주의자였습니다. 그런 그가 깨달은 것이 있는데, 이는 “문법을 모두 알고 있다고 해도 문법적 지식으로 언어를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언어가 문법적으로 모두 해석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뒤 크라센박사는 그의 언어학적 연구의 여정에 잊지 못할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이는 바로 16개 국어를 구사하는 언어 천재인 카토 롬브(Kato Lomb, 1909-2003)라고 하는 헝가리 여성이었습니다. 동시 통역까지도 하는 그녀는 놀랍게도 20대에 처음 외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녀의 언어 습득은 제가 공부한 방법과 좀 달랐지만 문법에 있어서는 저의 의견과 거의 일맥 상통했습니다.

 

 문법공부는 그 언어를 습득한 뒤 언어에 대해서 공부하고자 하는 언어학자들이 하는 공부이지, 영어 습득을 위해서 하는 공부는 절대 아니다.” 라고 저는 주장하였는데, 카토 롬브 역시 “One learns grammar from language, not language from grammar.” (언어로부터, 문법을 배울 수는 있어도, 문법으로부터 언어를 배울 수는 없다.) 라고 말해 저의 주장이 나만의 독선이 아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글을 쓴다면, 문법을 배우는 것이, 그리고 수학공식처럼 풀이해서, 끼워 맞추는 수능 및 지금의 영어 교육이 왜 신경학적으로 불필요하고 우리 청소년들의 인생을 허비하게 하는 것인지 이에 초점을 맞추어 한번 글을 써보고 싶습니다.



6. 마지막으로 본업인 신경과 의사로 돌아와서 진료 보는데 신경과학회에 바라는 점이 있으시면 말씀 부탁 드립니다.


우선 신경과학회 모든 임원 및 선배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신경과를 하면서, 제가 배우고, 깨닫고, 그리고 받은 관심과 사랑이 넘쳐, ‘나는 축복 받은 사람이구나’ 라고 항상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인생은 강을 거슬러 노를 저어 가는 배와 같아서 가만히 안주하면, 배는 뒤로 가고, 적당히 저으면, 제자리에 있고, 기를 쓰고 열심을 다해 저으면 앞으로 간다고 생각합니다. 신경학적 지식도 마찬가지로, 가만히 쳇바퀴 돌 듯 환자만 보고 지내다 보면, 어느덧 배웠던 의학적 지식을 잊어버리고 그러다 보면, 편협한 경험이 전부인 것처럼 믿고 잘못된 진료를 할 수도 있고, 때론, 알게 모르게 환자분들의 중요한 질환이나 아픔을 놓칠 수가 있는데, 학회에서 좋은 교육 프로그램들을 제공해 주셔서, 이에 대해서도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40대 중반을 넘어 5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지만, 열심히 공부하고자 많은 보수교육을 찾아가 들었고, 올해 초에는 대한임상신경생리학회에서 주관하는 신경전도 근전도 전문의 시험도 보았으며, 몇몇 선배님들의 도움으로 증례보고도 할 수 있었고, 뇌파 온라인 강의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외 Off-Line으로 하는 많은 좋은 강의나 집담회가 주로 수도권에 더 많아서, 아쉬울 때가 있습니다. 앞으로 화상으로 집담회에 참여가 가능해서, 마치 TV방송처럼 ‘Youtube’와 같은 streaming 서비스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되거나, 혹은 좋은 강의는 (금액 지불해서라도 ㅎ) 재방송으로라도 다시 볼 수 기회가 생기면 좋을 것 같고, 지금처럼 순회 보수교육을 적극적으로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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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영어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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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모닝스페셜 토요일 특별 게스트 출연 (당시 진행자: 태인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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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ffe B;rain
글_박지욱(제주 박지욱신경과의원)


이 한 장의 그림 속, 샤르코


신경학(Neurology)’이라는 이름을 처음 만든 이는 17세기 영국 의사인 토마스 윌리스(Thomas Willis; 1621~1675)이다. 하지만, 현대 신경학의 창시자는 프랑스 의사인 쟝 마르탱 샤르코((Jean-Martin Charcot; 1825~1893)이다. 샤르코는 신경학 이외에도 의학의 여러 분야에서 큰 업적을 남겼는데, 그의 이름이 등장하는 의학 용어만 해도 ‘Charcot-Bouchard aneurysm, Charcot-Willbrand syndrome, Charcot diseas(ALS의 옛이름), Charcot-Marie-Tooth disease, Charcot’s triad, Charcot’s artery, Charcot’s joint(Charcot’s foot, Charcot’s arthritis; neuropathic arthropathy), Charcot-Leyden crystals, Charcot-Neumann crystals, Charcot-Vigouroux sign, Charcot’s hepatic fever...’ 등 셀 수 없이 많다.
그의 업적은 일반 의학, 신경학, 히스테리, 최면의 3개 분야로 나눌 수 있다. 우리 신경과 동료의사들에게는 샤르코는 뛰어난 신경학자로 기억되지만 일반 대중들에겐 히스테리와 최면술 전문가로 더 알려졌다. 아마 그 이유는 이 한 장의 그림 때문이 아닐까?
아래의 그림은 의사라면 누구나 한 번은 보았을 그림으로, 앙드레 브루이(Pierre Aristide Andr? Brouillet)가 1887년에 그린, <살페트리에 병원의 임상 수업(A Clinical Lesson at the 
Salpêtrière)>이다. 원화는 현재 파리 데카르트대학교 의학사 박물관에 있고 복제본은 살페트리에 병원의 바빈스키동(棟)에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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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Clinical Lesson at the Salpêtrière>, Pierre Aristide André Brouillet, 1887.


그림은 쟝마르탱 샤르코(Jean-Martin Charcot)가 제자들 앞에서 히스테리 발작을 일으킨 여성에 대한 강의를 하는 한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이 그림 속에는 무려 서른 명에 가까운 사람들의 얼굴이 보인다. 이 얼굴들은 화가의 상상 속 얼굴이 아니라 모두 실존 인물들의 얼굴이며, 그 얼굴들은 실제 모습을 충실히 재현했기에 얼굴을 잘 살펴보면 그림 속 등장 인물들의 신원을 모두 확인할 수 있다.

서른 명 모두를 우리가 다 기억할 필요는 없겠지만, 우리에게 이름부터 너무 익숙한 이들이기에 신경과 의사라면 6명의 얼굴은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필자는 주요한 인물 6명에 번호를 붙여두었고, 각 인물의 사진이나 초상화를 첨부한다. 그 초상화를 보고 그림 속의 인물들을 찾아보시길 바란다. 그림이 그려진 해는 1887년이므로 샤르코는 62세, 브리소는 35세, 마리는 34세, 바빈스키와 뚜레는 30세, 아들 샤르코는 20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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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르코(Jean-Martin Charc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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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샤르코(Jean-Baptiste Charc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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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Pierre Mar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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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빈스키(Joseph Babins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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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코난 도일(Arthur Conan Doyle)

       

참고로 <셜록 홈즈>를 만든 의사이자 작가인 아서 코난 도일과 아주 닮았다. 바빈스키가 2년 연상이고 2년 더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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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레(Gilles de la Touret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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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소(Edouard Brissaud)

☞ 정답을 작성하여 보내주신 신경과 회원께는 선착순 5명에 한해서 소정의 상품을 지급드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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