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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이호철신경과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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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대구에 개원한 이호철입니다. 경북대학교병원에서 신경과 전공의/전임의를 했었고, 선린병원, 대구동산병원 등에서 근무 후 개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2. 개업을 하신 계기가 있나요?


대학병원 및 종합병원에서 근무를 하면서 다양한 환자들을 만나면서 경험을 쌓은 점은 좋았지만 입원 환자나 응급실 진료 등으로 외래 진료와 병원에서의 요구하는 방향으로 진료를 해야하는 점에서 한계를 느꼈습니다. 그래서 저만의 방식으로 진료를 하고 싶은 마음에 개업을 했습니다.


3. 개업하시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개업을 하면서 어려운 점은 모든 걸 혼자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도와주려는 사람은 있지만 스스로도 업무를 내가 다 알아야 진정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혼자서 뛰어다니며 준비했는데, 개원 후 운영에 대한 걱정을 하면서 다니다 보니 불안감도 많았습니다.


4. 어떤 콘셉트를 가지고 개업을 하셨나요?


병원이 아니라 1차 의원이고 CT나 MRI도 없다보니 이전과 환자 종류도 달라질 것 같아서 처음에는 이것저것 다 해볼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신경과 자체에 집중하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개원했습니다. 내원한 분들의 신경과적인 생각은 다 해결해 줄 수 있는 의원, 그리고 그분들이 가지고 있는 다른 동반 질환도 관리할 수 있는 신경과를 콘셉트로 했습니다.


5. 병원 소개 부탁드립니다.


대구 서구에 위치한 신경과입니다. 아직 초반이라 서투른 점도 있지만 가까운 곳에서 양질의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곳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번 방문하면 후회 하지는 않을 신경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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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원의: 삼성밸런스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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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나건엽이라고 합니다. 계명의대 99학번이고 계명대 동산의료원에서 인턴, 전공의를 마치고 삼성서울병원에서 sleep, epilepsy part 전임의를 하고는 2015년 개업을 하여 지금까지 살아남아 있습니다.


2. 개업을 하신 계기가 있나요?


처음부터 개업을 생각했던 것은 아닌데 삼성서울병원에서 전임의를 하던 중 연구는 나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들 그리고 메이저 병원에서 key를 쥐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찰나 삼성서울병원에서 근무 중에 메르스 사태가 터졌고 고민할 시간이 생기고 우연한 기회에 연고지도 없는 서울에 개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3. 개업하시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연고가 없고 생각했던 것보다 입지도 좋지 않아 운영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또한 개원도 당연히 처음이고 통증에 대해 공부를 해왔지만 직접 환자를 마주하다 보니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환자를 보면서 공부를 더 깊이 시작하게 되었고 이후 살아남기 위해 근골격계 초음파학회에 강사로 지원하여 여러 가지 노하우를 알게 되고 병원의 시스템을 잡아가게 되었습니다.


4. 어떤 콘셉트를 가지고 개업을 하셨나요?


애초에 시작은 신경과에 통증을 가미하고 영양, 성장까지 두루 보겠다는 심산이었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았고 이후로 신경과 영역이 자연스럽게 정리가 되면서 현재는 통증만 보고 있습니다. 신경과는 간단히 치료되는 부분도 있지만 비교적 장기적으로 끌고 가는 질환들이 많다 보니 눈에 보이는 효과를 내는 것에 어려움이 있어 보였지만 통증 쪽은 바로바로 효과가 나타나니 좀 더 재밌는 영역이고 생각보다 생리학적, 화학적인 부분과 몸의 전반적인 모습들이 함께 관여하는 부분들을 보면서 평생 공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5. 병원 소개 부탁드립니다.


현재 신경과, 신경외과, 외과, 재활의학과 로 구성된 4명의 전문의와 10명의 물리치료사를 포함 총 24명의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고 가을에 확장을 염두에 두고 달리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Orthopedic medicine 즉 정형내과로 수술은 하지 않지만 통증 전반을 보는 의원으로 기본적인 block, prolotherapy, hydrodissection 및 balance therapy 등의 주사치료와 chiropractic 위주의 도수치료 함께 접목된 재활치료 및 특수치료를 시행하며 2021년부터는 흔히 알고 있는 하지정맥류에서 확장된 개념인 정맥순환부전이 통증의 주원인 중 하나라는 사실에 착안하여 정맥 치료 및 시술도 함께 해 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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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전공의 생활
강동경희대병원 신경과 전공의들의 슬전생

  글_이승민(강동경희대병원 신경과 전공의 4년차)



“2022년 5월 현재 강동경희대학교병원 신경과 전공의들이 바쁜 병원일상을 슬기롭게 해 나가기 위한 활력소로 어떠한 취미들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았습니다.”



R4 이승민 전공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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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 생활을 마치고 군의관으로 군 복무를 하던 시절은 외로움과의 싸움이었습니다. 대부분 군부대가 그렇듯 제가 지내던 곳도 시내와의 거리가 먼 곳에 위치하고 있어 일과시간을 마치고 나면 나 홀로 지내는 숙소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인터넷을 하는 일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마트에서 와인을 사 온 적이 있습니다. 와인병 레이블을 보고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와인은 원산지도 다양하고 품종과 저장 기간에 따라 맛과 향의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와인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책도 찾아보고, 휴가 때면 와인 동호회에 참여하고 관련 수업도 찾아 들었습니다.
2019년 5월부터 전공의 생활을 시작해서 어느덧 4년차가 되었습니다. 바쁜 일정들로 모임을 많이 나가지는 못하지만 여건이 될 때마다 와인을 접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와인은 음식과의 조합이 중요하다 보니 동호회에서 모임 장소를 많이 신경 쓰는 편인데, 평소 혼자서는 가기 힘든 유명한 맛집도 가볼 수 있어서 좋습니다. 또한 다양한 직업을 가진 분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제 시야를 넓혀 나갈 수 있으며, 동호회를 통해 많은 친구들을 만나게 되어서 저의 취미생활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전공의 업무에 지장을 줄 정도의 음주는 하지 않는 것이 제가 술을 마실 때의 철칙입니다. 신경과 회식 때 와인을 고르거나 소개해 드릴 수 있을 정도가 되었고, 함께 와인을 음미하며 나누는 대화들이 바쁜 병원생활에 한 번씩 활력소가 되어주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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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3 박건우 전공의


학생 때는 자전거 타기, 러닝, 웨이트 트레이닝과 같이 땀 흘리며 운동하는 것을 좋아했고 동기들과 여행 다니는 것도 좋아했습니다. 다들 마찬가지겠지만 전공의 생활을 하면서 시간이 넉넉하지 않아 운동을 할 시간이 부족해 아쉽습니다.
그래도 제 삶을 재충전해 주는 일이 지금도 있습니다. 컴퓨터 조립 및 수리입니다. 컴퓨터 관련 전공을 한 것은 아니지만, 학생 때 인터넷 검색을 하면서 컴퓨터에 대한 지식을 쌓고 돈을 모아 직접 부품들을 사서 친구들과 조립도 했습니다. 컴퓨터에 대해 공부하고 조립을 할 때에는 힘든 일도 잠시 잊고 컴퓨터에만 집중할 수 있습니다. 컴퓨터의 기본적인 구조나 작동 원리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지식과 경험을 쌓다 보니 시스템 업그레이드, 윈도우 및 부품 설치도 할 줄 알게 되었습니다.
신경과 당직실의 컴퓨터가 오래되어, 3대 중 2대가 부팅도 잘 안되고 사용 도중 블루 스크린이 자주 떠서 전공의들이 불편함을 겪는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지식을 기반으로 컴퓨터 본체를 열어서 청소, 분해작업을 한 후 포맷까지 해서 다시 쓸 수 있도록 한 적이 있습니다. 4년차 이승민 선생님과 신경과 의국의 컴퓨터 부품을 고를 때도 조언을 해 주고 설치하는 것도 도와주기도 하였습니다.
학생 때 취미로 시작한 일이 지금까지 이어지게 되어 스트레스 해소에도 도움이 되고 과에도 기여할 수 있어, 좋은 취미를 가진 것 같아 뿌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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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2 황성택 전공의


어느덧 시간이 지나 2년차 전공의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일도 어렵고 하루 일과 중 응급상황도 많아 힘들었습니다. 아직도 처음 당직 때 중환자실로 입원시켰던 환자와 그때 옆에서 도와주던 졸국한 박상일 선생님, 처음으로 시술을 위해 환자와 함께 혈관조영실로 이동했을 때의 분위기가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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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보건의 때부터 러닝하는 것을 좋아해서 시간이 나면 한강공원으로 나가서 30분 정도 달립니다. 보통 5km 정도를 뛰지만 컨디션이 좋으면 8km 정도도 가능합니다. 당직을 끝내고 주말 아침에 뛰고 난 후 침대에 누울 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저만의 행복감을 느낄 수 있으며, 날씨가 좋은 계절에는 좀 더 자주 뛰어보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건강을 챙기고 체력을 기르면서 주중에 쌓였던 스트레스도 풀 수 있는 러닝은 지금 저에게는 최고의 취미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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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 이진용 전공의


입국 후 교수님들의 지도와 다른 전공의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으며 신경과 의사로 점차 성장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일이 익숙하지 않아 오더가 쌓여 집에 늦게 가는 일도 많았지만 지금은 일이 조금 익숙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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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도착하면 지쳐 이전에 조금씩 하던 운동이나 책 읽기는 하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만 있다가 잠드는 때도 많습니다. 그래도 남는 시간에 넷플릭스를 시청하거나 영화관에 직접 가서 영화를 관람하고 있습니다. 영화 감상은 반복되는 전공의 생활 속에서 활력소이기도 하며, 주인공의 일생이나 삶의 중요한 이벤트를 영화라는 매개체를 통해 간접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매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액션 영화를 보면서 스트레스를 풀기도 하고, 종교영화나 철학적인 내용이 담겨 있는 영화를 보며 다른 일을 잠시 잊고 사색에 잠기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시간을 병원에서 보내다 보니 다른 환경을 접하기 힘든 전공의 선생님들이 가질 수 있는 쉽고도 좋은 취미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에는 치매를 소재로 한 「스틸 앨리스」라는 영화를 보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점점 기억을 잃어가는 과정에서 주인공이 힘들게 그 상황을 극복해 가는 것을 보며 절망적인 상황의 환자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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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틸 앨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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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G를 발견한 한스 베르거(Hans Berger)

  글_박지욱(제주 박지욱 신경과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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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베르거. wikipedia 자료


한스 베르거(Hans Berger; 1873~1941)는 1873년에 지금은 독일의 바이에른 주에 속하는 코부르크(Coburg, Bayern)에서 의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 지역은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령(Saxe-Coburg-Gotha)에 속했던 곳으로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인 알버트 공((Prince Albert of Saxe-Coburg and Gotha)이 바로 이 지역 출신이다.
부친은 지역 요양원 의사였고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다. 천문학자를 꿈꾼 베르거는 예나의 프리드리히 쉴러 대학교(Friedrich Schiller University of Jena) 수학과 입학했지만 한 학기 만에 휴학하고 군에 입대한다.
1892년, 군 복무 중에 말에서 떨어져 마차 바퀴에 깔려 하마터면 죽을뻔 한 사고를 겪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는데 정작 더 놀랄 일은 그날 저녁에 있었다. 고향 집에 있던 그의 누이가 갑자기 그의 신변에 이상이 생긴 것을 직감하고 긴급 전보를 보낸 것이 아닌가!
베르거는 자신에게 닥친 절체절명의 순간이 어떻게 그 먼 곳으로 전해졌을까 궁금했고, 어쩌면 뇌가 긴박한 상황에서 일종의 텔레파시(telepathy)를 가까운 사람에게 쏘아 보낼 수 있지는 않을까 생각한다. 이것을 연구해 보기로 결심하고 천문학자의 꿈을 접고 의사가 되기 위해 예나 대학(University of Jena)에 입학한다.

☞관련 영상 바로 가기: alt 


1897년, 24세의 나이로 의대를 졸업한 베르거는 예나대학병원의 정신-신경의학과에서 빈스방거(Otto Ludwig Binswanger; 1852~1929)의 조수가 된다. 1919년에는 빈스방거의 뒤를 이어 과장이 되었고, 1938년에 은퇴할 때까지 이곳에서 일한다.
*오토 빈스방거가 1894년에 발견한 병에 그의 이름을 붙여 우리는 빈스방거 병(Binswanger’s disease)으로 부른다. 그의 휘하에는 브로드만(Korbinian Brodmann; 1868~1918), 포그트(Oskar Vogt; 1870~1959)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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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 빈스방거. wikipedia 자료


1930년대 후반 독일과 오스트리아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나치 정권의 등장과 대격동을 피할 수 없었다. 베르거도 예외는 아니었다. 강제로 공직에서 물러난 베르거는 건강을 잃었고, 심한 우울증을 얻었다. 그리고 1941년 6월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만다. 향년 68세.

베르거는 먼저 텔레파시 같은 정신 현상의 기전을 밝히는 연구를 했다. 하지만 100년이 지난 지금도 그렇지만 그의 연구도 별 소득이 없었다. 그래서 뇌의 전기 활동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전기가 흐르는 뇌(electrical brain)’는 어떻게 발견했을까? 그보다 먼저 알려진 ‘전기가 흐르는 근육’ 이야기부터 먼저 알아보자.

1786년에 볼로냐대학의 해부학 교수인 갈바니(Luigi Galvani; 1737~1798)는 개구리 뒷다리를 잘라 금속 꼬챙이에 끼워 두었다가 저절로 움직이는 현상을 발견했고 이를 통해 동물의 몸속에 전기가 흐른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갈바니는 근육을 직접 자극하지 않고 뇌를 자극해서 근육을 움직이려는 대담한 실험도 해보았지만 실패했다. 하지만 조카인 알디니(Giovanni Aldini; 1762~1834)는 소의 뇌를 열어 직접 전기 자극하여 눈꺼풀, 입술, 눈을 움직이는데 성공해 삼촌의 한을 풀어주었다. 알디니와 동료들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참수형 당한 죄수를 포함한 ‘죽은 사람’에게도 같은 실험을 했다.


*이 실험은 나중에 메리 셰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탄생에도 자극을 팍팍 주었다.
*영화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의 탄생] a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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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디니의 실험. wikipedia 자료


한편 볼타(Alessandro Volta; 1745~1827)는 1800년에 전지를 발명해 이제 원하는 때에 언제든 전기를 이용할 수 있게 된다. 전기는 의료계에 도입되어 먼저 치료제로 쓰인다(electrostimulation). 다양한 전기(자극)치료법이 세상에 쏟아져 나오는 한편 생체 내의 전기를 측정하고 연구하는 신경생리학 연구도 시작되었다.
롤란도(Luigi Rolando; 1773~1831)는 1809년에 뇌 기능을 연구하기 위해 처음으로 동물의 뇌 표면을 직류 전류(galvanic current)로 자극했다. 1870년에는 프리치(Gustav Fritsch; 1838~1927)와 히치히(Eduard Hitzig; 1838~1907)는 개의 뇌 피질 특정 부위를 자극하면 근육 운동을 일으킨다는 것을 발견한다(운동 피질의 발견). 1872년에 페리어(David Ferrier; 1843~1924)는 뇌의 자극 부위에 따라 다른 근육 운동 운동을 담당하는 것을 밝혔다.
이런 연구들은 뇌의 기능은 통으로 된 것(holism)이 아니라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는(localism) 개념으로 발전했다. 1874년에는 바틀로우(Robert Bartholow; 1831~1904)가 처음으로 깨어 있는 ‘인간’의 뇌를 전기 자극하는 연구를 했다.
이처럼 전기로 뇌를 전기로 자극하면 반대편 몸에 근육 운동 생기는 것은 이제 상식이 되었다. 하지만 뇌가 방출하는, 미세한 전기 활동은 처음에는 몰랐다.
1875년에 영국의 캐튼(Richard Caton; 1842~1926)는 처음으로 동물의 두개골 열고 검류계(galvanometer)를 써 뇌 회백질에서 발생하는 전류를 측정했다. 이후로 여러 연구와 발견이 쌓였고 이를 토대로 1924년 7월 6일에 베르거는 신경외과 수술 중인 17세 소년의 뇌에서 처음으로 뇌전도(EEG)를 기록하는데 성공했다.
* 이 사실을 1929년에 Archive für Psychiatre und Nervenkrankheiten에 “Uber das Elektrenkephalogramm des Menschen, (On the EEG in humans)”으로 발표했다. 처음으로 발표하면서 ‘α파’와 ‘β파’라는 용어를 썼다. α파는 발견자의 이름을 기려 ‘베르거 파’라고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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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EEG. wikipedia 자료


*베르거는 다양한 연령대의 남녀에게서 다양한 정신 활동(집중, 수면)중의 소견, 그리고 종양에서는 파형이 다르게 나오는 사실을 논문에 실었다. 특이한 것은 베르거가 잡파(artifact)로 무시한 파형을 얼마 후 미국 연구자들이 "spike and waves"로 기술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베르거의 EEG 발견과 연구는 인정을 받지 못했고 살아 생전에 큰 영예도 누리지 못했다. 대수롭지 않은 발견으로 취급되었다. 하지만 후속 연구들이 잇따르면서 EEG의 가치가 드러났다. 대표적인 연구는 1930년대 중반에 수면 중 뇌파가 아주 극적으로 변하는 것 발견한 루미스(Alfred Loomis; 1887~1975)의 연구다.
EEG의 등장은 요추천자(lumbar puncture), 공기조영법(pneumoencephalography), 뇌실조영법(ventriculography)을 가지고 뇌질환의 위치를 찾으려는(localization) 신경과 의사들에겐 천군만마가 되어주었다. 비침습적이고도 상대적으로 간편한 검사인 EEG를 이용하면 파형의 변화를 보이는 곳이 바로 병변의 위치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50년 후 50년 후에 CT/MRI가 등장하기 전까지 EEG는 신경과 의사들에게 매우 중요한 검사법이었다.
하지만 첨단 영상 기기의 등장으로 EEG의 위상은 많이 떨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뇌전증은 물론이고 종양이나 퇴행성 질환 그리고 수면 검사에서는 건재하다. 우리는 간과하고 있지만 병원 밖에서도 EEG는 많이 쓴다. 뇌파를 이용한 거짓말 탐지기도 있고, 집중력을 높이는 데도 EEG가 쓰였다. 1977년에 발사된 무인 탐사선 <보이저(Voyager)>에는 한 시간 분량의 인간 뇌파가 실려 있다.
*이 뇌파의 주인은 앤 드류얀(Anne Ann Druyan; 1949~)으로 TV용 다큐멘터리 <코스모스>에서 칼 세이건과 함께 작업했다. 이후로 두 사람은 결혼했다.

최근에는 국내에서도 재미난 기사가 있다. EEG를 이용해 버스 운전기사의 졸음을 방지하는 기구도 등장했다고 한다. 귀 뒤에 부착하면 졸음은 물론이고 흥분 상태까지 경고해 준단다.

☞관련 기사 바로 가기: alt 


이러한 의료 외적인 쓰임새에 대해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해야 할까? EEG를 잘 아는 우리 신경과 의사의 관점으로는 이런 부수적인 사용이 얼토당토않은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하지만 우리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조금만 관심을 가진다면 EEG의 지평을 더 넓힐 수 있지 않을까? 지금 당장 드는 생각은 없을까? 에이, 너무 엉뚱하다고 생각을 지울 필요는 없다. 한스 베르거은 어땠는가? 텔레파시를 찾겠다고 나섰다가 EEG의 아버지가 되지 않았나? 기발한 생각은 많을수록 좋다. 부끄러운 일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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