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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ffe B;rain


글_박지욱(제주 박지욱신경과의원)


코르사코프의 삶과 티아민의 발견


내가 인생의 마지막에 끝닿을 곳, 그 곳은 모든 기억의 상실이다. 기억의 상실과 함께 나의 전 생애는 사라진다. 내 어머니의 전 생애가 그러했듯이…
- 스페인-멕시코 영화감독, 루이스 브뉴엘(Luis Bunuel)


기억은 기억일 뿐이며, 자서전이 아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기억이 우리를 정직한 거짓말쟁이로 만들 수 있다.
- 과학저술가 샘 킨(Sam Kean), 『뇌과학자들』


기억에 관한 기억들은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거개는 사라지는 것으로 존재감을 주장하는 존재가 바로 기억이기 때문이다. 기억은 부조리하다. 더 많이 기억하기 위해서는 더 잘 잊어야 한다. 그래서 모든 것을 다 기억한다는 말은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불안전한 기억이라면 어떨까? 기억의 공백은 적어도 정상인에게는 고통을 안겨준다. 하지만 어떤 이들에겐 기억의 공백쯤은 아무 것도 아니다. 금세 새롭고도 놀라운 이야깃거리로 가득 채울 수 있으니까. 러시아의 코르사코프는 그들을 발견해 세상에 알렸다.


코르사코프 증후군(Korsakoff syndrome)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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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게이 세르게비치 코르사코프.

위키백과 자료

러시아를 대표하는 신경-정신의학자 세르게이 세르게비치 코르사코프(Sergei Sergeivich Korsakoff; 1854~1900년)는 1854년에 모스크바 외곽의 작은 도시에서 태어났다(당시 제정 러시아의 수도는 페테르스부르크였다). 모스크바대학교를 다녔고 1875년에 졸업했다. 정신과 클리닉에서 1년, 그리고 신경학자인 코첸프니코프(Aleksey Yakovlevich Kozhevnikov; 1836~1902)의 클리닉에서 3년을 일했다. 1877년에 학위 논문으로 <알코올성 마비에 관하여 About alcoholic paralysis>를 제출했다. 그해에 스승이라 할 코첸프니코프(Aleksey Yakovlevich Kozhevnikov; 1836~1902)가 모스크바대학교에 신경정신의학 클리닉을 창설하고 과장으로 자리를 옮기자 코르사코프도 대학의 정신과에 합류했다. 대학에 근무하는 동안 유럽 여러 곳을 여행하며 비엔나의 마이네르트(Theodor Meynert), 베를린의 베스트팔(Karl Friedrich Otto Westphal), 뮌헨의 크래펠린(Emil Kraepelin) 등에게 배우고 교분을 쌓았다.

1890년에 코첸프니코프는 정신과를 코르사코프에게 맡기고 자신은 신경과를 독립시켜 맡았다. 이로써 모스크바는 러시아와 유럽에서 최초로 정신과와 신경과를 분리한 도시가 되었다.


코르사코프는 진보적인 정신과 의사였다. 프랑스의 피넬(Philippe Pinel)처럼 환자들을 구속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인도적인 치료법을 주창했다. 연구에도 매진해 다양한 정신병을 연구했고, 편집증(paranoia)의 개념을 개발했으며, 정신병의 분류 체계를 개선했다. 코르사코프는 정신병의 원인을 뇌에서 찾으려 했다.


그는 특히 알코올 중독자들이 팔다리 근육위축, 건망증, 이야기 지어내기(confabulation)을 보이는 것에 주목했다. 알코올 중독자들은 여러 이유로 술을 끊게 되고, 며칠이 지나면 의식의 혼돈 시기를 거치며 안정을 되찾는다. 하지만 이때부터 환자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기억, 특히 최근의 기억이 사라지지만, 환자들은 그 사실을 모른다. 기억의 공백은 다른 기억으로 깔끔하게 채워져 내용을 모르는 사람들이 듣는다면 깜빡 속아 넘어간다. 하지만 건망증만의 문제도 아니었다. 일부 환자들은 팔다리 근육과 호흡근의 마비가 왔고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었다.  이전에도 알코올 중독이 건망증을 일으킨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코르사코프는 건망증의 원인을 신경염으로 지목했다. 그는 이미 신경염을 일으키는 여러 원인- 티푸스, 결핵, 산욕열, 중독(비소, 납, 일산화탄소 등)-을 밝혔는데, 알코올 역시 신경염을 일으켜 팔다리 마비와 기억 장애를 초래하는 것으로 보았다. 코르사코프는 알코올 중독이 일으키는 독성 정신병을 cerebropathia psychica toxaemica 라 불렀다.  


코르사코프는 1887년부터 1891년까지 6편의 관련 논문을 발표했는데 일부는 신경학의 선진국인 프랑스와 독일의 정신의학 학술지에 발표했다(독일어와 영어에도 능통했다). 덕분에 그는 러시아를 대표하는 신경정신의학자로 기억되었고, 세계적인 최신 의학 수준에도 뒤쳐지지 않았다. 1897년에 코르사코프가 조직한 제12차 국제의학학술대회가 모스크바에서 열렸다. 신경정신의학 세션에서 베를린의 욜리(Friedrich Jolly) 교수는 정신병의 원인으로 신경염을 발견한 코르사코프의 업적을 치하하는 한편, 신경염과 건망증의 관계는 모호하므로 코르사코프의 ‘cerebropathia psychica toxaemica’ 를 ‘코르사코프 증후군’으로 부를 것을 제안한다. 이로부터 신경염은 떨어져 나갔고 지금은 심각한 기억장애 만을 코르사코프 증후군으로 부른다.하지만 욜리와 코르사코프 모두 독물질의 직접 원인이 아닌, 대사상의 변화를 원인으로 생각했다. 우리가 잘 아는 비타민의 개념도, 결핍성 질환의 개념도 없던 시대였다. 하지만 코르사코프 증후군의 병인을 해결해줄 실마리는 지구 반대편에서 풀리기 시작했다.



네덜란드령 동인도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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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미와 백미. 자세히 보면 쌀(씨)눈도 안 보인다.

박지욱 사진

오래 전부터 아시아인들은 쌀농사를 지었다. 인도와 중국에서 시작되어 아시아 전역으로 퍼진 쌀은 지금도 아시아인들의 중요한 먹거리다. 쌀은 벼(Oryza sativa(아시아 형)와 Oryza glaberrima(아프리카 형))의 씨앗에서 껍질을 벗겨낸 먹거리다. 벼 씨앗의 20%를 차지하는 거친 겉껍질인 ‘왕겨’를 벗겨내면 짙은 색의 쌀이 남는데 이를 현미라 부른다. 현미는 다시 쌀겨(5%), 씨눈(胚芽;3%), 씨젖(胚乳;92%)으로 나뉜다. 현미의 겉부분인 ‘쌀겨’에는 단백질, 무기질, 비타민이 풍부하다. 쌀(씨)눈에는 지방이 풍부하다.

씨젖은 탄수화물 성분이다. 현미에서 쌀겨와 씨눈을 벗겨내고(도정) 남은 씨젖이 바로 우리가 즐겨먹는 백미다.
현미를 백미로 도정하면 중량이 10% 줄어들며 백미가 된다. 하지만 무게 뿐만 아니라 영양소도 대폭 줄어든다. 백미를 다시 술로 만들면 쌀의 중량이 50% 정도로 줄어든다.

벼를 쌀로 먹기 위한 도정 과정은 필수적이서 유래가 깊다. 1870년대가 되면 도정 기술의 발달로 현미의 쌀겨를 제거해 백미를 먹기 시작했다. 그러자 전에 없던 특이한 병이 만연하게 되었다. 스리랑카 사람들이 ‘beriberi(베리베리)’라 부르는 병이었다.
1879년에 또 다른 네덜란드 의사는 네덜란드령 동인도(지금의 인도네시아) 출신 선원들도 베리베리를 앓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같은 배에 탄 네덜란드 선원들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두 집단의 차이라면 아시아인들만 쌀을 먹는다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의사들은 쌀이 오염되었고, 오염된 쌀에서 나온 중독성 물질이 체내에 축적되어 천천히 베리베리를 일으키는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그런 원인 물질은 결코 발견된 적이 없었다. 
1890년에 네덜란드 세균학자인 에이크만(Christian Eijkman; 1858~1930)이  도정하며 벗겨내는 겨에서 ‘신경염을 예방’하는 물질을 발견했다. 에이크만은 닭에게 도정한 쌀만을 먹여 신경염에 걸리게 한 후, 다시 현미를 먹여 신경염을 치료했다. 그는 죄수들
에게도 후속 연구를 시행해 결과를 확인했다. 이렇게 병의 원인과 치료를 동시에 발견했다. 1911년에 폴란드 생화학자 풍크(Casimir Funk; 1884~1967)는 새의 신경염을 고쳐준 물질을 분리해 ‘생명(vita)’에 필수적인 ‘아민(amine)’이란 뜻의 이름인 ‘비타민’으로 불렀다(나중에 vitamin으로 고쳐진다).



티아민이 해결책


1926년에는 쌀겨에서 티아민을 분리하는데 성공했고 다발성 신경염의 치료와 예방 효과를 확인했다. 1931년에는 효모에서 티아민을 추출했고, 1936년에는 화학적으로 합성했다. 티아민을 코르사코프 증후군 환자에게 투여하여 효과가 확증하였다. 티아민은 처음에는 ‘aneurin (anti-neuritic vitamin)’으로 불렸다가, thiamin(황 함유 아민이란 뜻)을 거쳐 오늘날의 티아민(thiamine)이 되었다.


티아민 결핍의 원인은 알코올 중독만이 아니었다. 이런저런 질병이나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동남아시아에서 일본군의 포로가 된 연합군 병사들도 영양실조로 생긴 티아민 결핍을 거쳐 베리베리나 코르사코프 증후군을 일으켰다. 지금도 심한 입덧, 소화기 질환, 위 축소 수술, 거식증, 심지어는 단식 투쟁으로도 티아민은 결핍될 수 있다.


티아민은 우리 몸에 저장되지 않는다. 때문에 적어도 매일 0.5mg을 섭취해야 한다. 수 개월동안 제대로 섭취하거나 흡수되지 않으면 결핍증이 생긴다. 1980년대에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정부는 알코올 중독자들이 즐겨 마시는 맥주에 티아민을 첨가해 코르사코프 증후군을 예방하려다 거센 저항에 부딪혀 실패했다. 양조 회사들은 술 맛이 떨어질 것을 우려했고, 영양사들은 병 주고 약 주는 정책보다는 강력한 금주 정책이 필요하다고 반대했다. 하지만 1991년부터 제빵용 밀가루에 강제로 티아민을 첨가했다. 통밀가루를 흰 밀가루로 만드는 과정에서 티아민 손실이 불가피해서 내놓은 고육지책이었다. 그 결과 코르사코프 증후군 발병은 급격히 줄었다.    



사족


1. 지금 우리가 백미를 먹기만 해도 베리베리에 걸리지 않는 것은 다른 음식들을 통해 티아민을 충분히 섭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에 죄수나 포로들은 도정된 쌀만 먹이는 것으로 끼니를 대신했을 때 베리베리는 만연했다. 그렇다면 알코올 중독자들은 왜 티아민이 부족할까? 그들은 술로 채워진 가짜 칼로리 때문에 허기를 느끼지 않아 균형 잡힌 식사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2. 벼에서 왕겨를 벗기면 현미, 다시 쌀겨를 벗기면 정백미(12분도 쌀)가 된다. 도정 정도에 따라 0분도(현미), 3, 5, 7, 9, 12분도쌀(정백미)로 구분한다.


3. beriberi 를 부르는 우리 이름 각기병(脚氣病)은 무슨 뜻일까? 정확한 어원과 의미를 확인하기 어렵다, 다만 한자에도 일본어에도 있는 병명이다. 사실 beriberi의 어원이 된 스리랑카 말은 ‘힘들어서 못하겠다-힘들어서 못하겠어’라는 뜻이라고 한다. 우리 말로 옮길 만한 적절한 표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제주어에는 ‘버치다’라는 말이 있는데 ‘힘들어서 못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보면 각기병이라는 뜻 모를 이름보다 ‘버쳐-버쳐’병으로 부르면 더 낫지 않을까?



**참고문헌**

1. 마음의 혼란(Ontregelde Geesten by Douwe Draaisma, 2006)/다우어 드라이스마 지음/조미현 옮김/에코 리브로/2015

2. 의학명에 이름을 남긴 사람들/김옥화 지음/여문각/2006

3. 우리는 우리 뇌다(Wij Zijn Ons Brein by Dick Swaab, 2010)/디크 스왑 지음/신순림 옮김/열린책들/2015

4. 뇌과학자들(The tale of the dueling neurosurgeons by Sam Kean, 2014) /샘 킨 지음/이충호 옮김/해나무/2017

5.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The Man Who Mistook His Wife for a Hat by Oliver Sacks, 1985)/올리버 색스 지음/조석현 옮김/살림터/1993

6. 신화 속 의학 이야기/박지욱 지음/한울/2014

7. Neurological Eponyms/edited by Peter J Koehler, George W Bruyn, John MS Pearce/Oxford University Press/2000

8. Handbook of Clinical Neurology vol 95/series editors Michael J. Amonoff, Franmcois Boller, and Dick F. Swaab/Elsevier/2010

9.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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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과 의사들의 취미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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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김두천(하나로 신경과의원)


1. 안녕하세요. 본인소개와 사진을 취미로 시작하시게 된 계기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A : 저는 광주에서 하나로 신경과를 개원하고 있는 김두천 원장입니다. 평소 3-4 시간 정도 시간이 있을 때 가족과 드라이브를 즐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꽃을 구경하거나 축제에 참여해서 즐기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멋진 카메라를 들고 재미있게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는 것이 부러웠어요. 7년 전 대학에서 운영하는 평생교육원에 등록하고 본격적으로 사진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주로 풍경사진을 찍는 것을 좋아하고. 인물사진은 교회에서 행사사진 부탁을 받으면 찍기도 합니다.


2. 연구 및 진료로 시간을 내는 일이 쉽지 않으실 텐데, 언제 사진을 찍으러 가시는지요?

A : 사진을 예쁘게 찍을 수 있는 시간이 있습니다. 흔히 golden hour 라고 합니다. 아침 풍경사진은 주로 일요일 새벽에 가서 3시간정도, 오후 풍경사진은 목요일 오후에 찍으러 갑니다. 5년 전부터 목요일은 오후 진료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주중에 진료를 하지 않고 취미생활을 하는 게 처음 결정은 힘들었지만 삶의 질을 많이 높이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3. 사모님도 같은 취미를 가지고 함께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A : 아내는 소아청소년과 개원의 입니다. 처음에는 혼자 사진을 찍었는데 5년 전부터는 아내와 함께 사진을 찍으러 다니고 있습니다. 풍경사진도 프레임에 사람이 들어가면 인상이 강해지는 경우가 있는데 아내가 모델 역할을 해주어 많은 도움이 됩니다.


4. 사진 찍는 일을 취미 생활로 하시면서 생긴 장점과 단점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A :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 사물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게 됩니다. 예를 들면, 찍고자 하는 피사체를 주의 깊게 관찰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가슴이 뛰는 희열을 느끼게 됩니다. 인물사진을 찍을 때면 사람들과 정서적으로 교감을 하게 되어 쉽게 친밀해지게 됩니다. 단점이라면 아침에 일어나면 매일 날씨 정보에 대한 앱을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5. 사진으로 상을 타신 경험 등에 대해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A :  사진을 시작한 처음 몇 년간은 한국 사진작가협회에서 주관하는 공모전에 사진을 출품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었지요. 공모전에 사진을 출품한다고 생각하면 사진을 잘 찍기 위해 집중력이 좋아집니다. 출사를 다녀온 후  전문가에게 평가를 받기도 하면서 실력이 조금씩 늘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공모전에 출품은 하지 않고 편안하게 즐기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한국사진작가협회 공모전 수상경력 : 금상 2회, 은상 1회, 동상 2회, 입선 13회>


6. 선생님이 갖고 계신 DSLR에 대한 설명과 찍은 사진 중에서 회보에 담을 사진을 보내주십시오. 

A : 카메라는 주로 캐논 5D Mark III를 사용합니다. 셔터소리, 그립감이 정말 훌륭해요. 디자인도 너무 좋고요. 상황에 따라 크롭바디나 소니 하이엔드 카메라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핸드폰 카메라의 성능이 우수하여 핸드폰으로 사진을 많이 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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