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경과여성전문의 1호_조필자
1. 대한신경과학회 조사 결과 원장님께서 여성1호 신경과 전문의(신경23) 로 확인되었습니다.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저는 제가 “신경과 전문의 여자 1호” 라는 사실을 이번 기회로 알게 되었습니다. 전문의 면허번호가 빠르다는 건 알았지만 별로 남자, 여자를 의식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단지 ”내 나이가 많구나···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올랐습니다.
2. 원장님께서 의대생이었을 시기에는 여자 의대생의 수가 정말 적었을 때입니다. 학교 다니실 때와 여성 전공의 생활을 하시면서 장점이나 어려운 점은 없으셨는지요?
A: 제가 입학할 때는 고려대의대 정원이 100명이었는데 전체 정원의 30%만 여학생을 뽑았습니다. 아마 여자가 성적이 더 좋았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하는데, 지금 같으면 인권위원회에서 문제 삼을 일이겠지요.
의과 대학생활에서는 자주 시험 치르던 기억밖에 없는데 공부하는 방법이나 요령을 잘 몰라서 너무 힘들게만 지내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그렇지만 졸업 후 인턴 생활은 학생 실습 때와는 달리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인턴 업무 처음 시작이 응급실인데, 제 요령이 환자가 오면 무조건 가장 빨리 내려오시는 과 선생님을 CALL하는 것이었습니다. 내려오신 선생님이 해당 과를 정해 주시면 다시 CALL하면 되니까요. 당시에는 별로 야단을 맞지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선생님들께서는 무척 화가 많이 나셨을 겁니다. 그리고, 당시 인턴은 요새처럼 심부름만 하는 것이 아니고 직접 환자진료에 참여하기 하기 때문에 여러 과를 돌면서도 무척 흥미로운 시간을 보낸 것으로 기억됩니다.
3. 원장님께서 신경과를 선택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A: 제가 전공의를 시작할 때 국립의료원에는 전문과목에 신경과가 없고 신경내과만 있었습니다. 국립의료원에서는 전통적으로 외과(Surgery)와 내과(Medicine) 분야로 나누고 세부 전공분야의 접두어로 S-와 M-을 사용하였는데 MN이 바로 신경내과로서 과장님과 모든 staff이 신경정신과 전문의였습니다. 사실 저는 이비인후과 전공의를 지원하려고 하였지만 경쟁률이 3대 1로 뒤로 밀렸는데 사무국에서 신경내과 전공의 자리가 있다고 해서 신경과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신경내과가 어떤 과인지, 어떤 환자를 진료하는지도 몰랐습니다. 그래도 일년 동안 쉬는 것 보다는 나을 것 같아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지원할 때 과장님께서 “열심히 하지 않으면 정신과와 신경과 이도 저도 아닌 의사가 될 수 있다.”고 이야기 하셨는데 당시 저로서는 이 말의 정확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제 신경내과 전공의 시절은 전반기와 후반기로 나뉩니다. 당시 국립의료원 MN의 모든 staff가 신경정신과 전문의였기 때문에 전공의 3년차까지는 신경과보다는 정신과 환자를 주로 진료했던 전반기입니다. 그러다가 3년차 말 국립의료원을 휴직하고 미국 알라바마 대학에서 신경과를 연수중인 남편(선우일남 교수)과 합류하게 되었는데 이때 이 대학 주임교수인 Dr. Halsy를 만나 1년 이상 뇌파검사를 배우면서 신경과 conference에도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선우교수와 함께 귀국한 다음, 국립의료원 MN 전공의 4년차로 복귀하였는데 이 때 마침 정경천 교수님이 신경과 staff로 잠깐 계시면서 신경과에 좀 더 많은 관심을 두고 공부한 후반기입니다. 또 이 때는 신경정신과가 신경과와 정신과로 분리하는 시기여서 신경정신과 전공의를 이수한 의사는 신경과와 정신과 양 과목의 전문의 시험에 응시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신경과 전문의 자격 취득 후 국립의료원 MN의 신경과 담당 staff로 임용되었고 후일 정신과와 독립해 나가면서 저는 계속 신경과 staff로 남게 되었습니다.
4. 선우교수님과는 어떻게 결혼하시게 되셨는지요?
우리가 처음 만난 것은 제가 의과대학 4학년 국가시험을 앞두었고, 선우교수가 내과 군의관으로 복무하던 시기였습니다. 결혼은 약 2년 간의 연애 후 제가 국립의료원 MN의 전공의, 선우교수가 신경과를 담당하는 6내과 교수로 임용되기 직전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신경과라는 전문과목 자체가 없는 시기였는데 둘 다 신경과 의사로서 지금까지 같이 활동하게 된 것이 우연의 소치인지 필연이었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선우교수가 미국으로 신경과 연수를 떠나고 제가 따라가서 뇌파분야를 전공하면서 우리는 같이 신경과 분야를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선우교수는 말초신경계를, 저는 뇌 분야를 전공한다는 차이가 있지만 제가 국립의료원 신경과 staff로 혼자 근무할 때 남편이 큰 도움이 된 것은 사실입니다.
5. 국립의료원 과장님도 하시고, 개원의 로도 성공하셨는데 장·단점을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성공이란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국립의료원 신경과 과장으로서 저는 정근호원장, 권기한교수, 선일주원장, 주인수교수, 김민기서울의료원장, 홍승희원장 등등 거의 매일 당직을 하느라 고생하셨던 여러 선생님들의 기억만 떠오르는데, 이것이 성공일까요? 그렇다고 뛰어난 의학적 업적도 없는데 말입니다. 더더욱 개원의로서는 성공하고 거리가 멀다고 생각합니다. 개원하고 한동안 무척 당황하였고 우울했습니다. 종합병원에서 진료했던 환자군과 개원 후의 환자군이 다르다는 것은 예상했지만 실제 부닥쳐 보니 제 예상보다 훨씬 차이가 많았습니다. 저 나름대로 국립의료원에서는 제 환자가 많았다고 생각했지만 이들은 대부분 개원 후 한 두 번 인사치레로 왔다가 다시 국립의료원으로 돌아갔습니다. 우선 여러 과를 다녀야 하는 환자나 특수한 검사가 필요한 환자는 제 환자가 아니라 국립의료원이라는 종합병원의 환자였습니다. 종합병원이라는 좋은 환경에서 많은 분들이 도와주신 결과를, 저는 제가 잘나서 그런 줄 착각했던 것입니다. 작은 의원에 있다고 무시하는 듯한 행동을 하는 환자도 드물지 않게 보는데 이 때마다 개원을 왜 했는지 회의에 빠지기도 합니다. 단지 아직 현역으로 환자를 진료할 수 있고 국립의료원 과장 때는 참석하지 않았던 대한의사협회, 서울시의사회, 한국여자의사회, 구의사회 등에 개원 후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 것을 하나의 보람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6. 후배 의사들에게 전하는 말
우리는 의사입니다. 나는 여자 의사이니까 라는 생각은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 의사라면 무조건 진료를 해야 한다는 생각도 옳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진료가 적성에 맞지 않는다면 의학자가 될 수도 있고, 행정이나 입법 분야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도 있습니다. 공무원이 되어서 의학지식을 활용해서 좀 더 뛰어난 의료제도를 제안하고 적용할 수도 있고, 구의원, 시의원, 국회의원 등으로 활동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 성별의 차이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대부분 의사 특히 여자의사는 진료를 해야 한다는 고정 관념에 빠져서 이런 활동을 하는 분이 드물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우려되는 것은 신경과를 지원하는 젊은 의사가 적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요인은 신경과 전공의 과정이 너무 어려운 반면, 전문의가 되어도 큰 희망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전공의 수련 과정에서의 진료 경험이 종합병원이나 대학병원에서의 진료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개원의사로서 활동할 때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저를 보더라도 종합병원에서 오랫동안 근무할 때 진료하던 환자군과 개원의사로서의 환자군에 큰 차이가 있습니다. 따라서 신경과 학회에서는 전공의 수련 과정과 개원의사로서 필요한 지식 사이의 격차를 줄이기 위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각종 회의는 가능한 꼭 참여하시기를 부탁합니다. 특히 정부기관이나 심평원, 건강보험공단의 회의는 개원 의사가 아니라 대학병원 교수들에게 참여를 의뢰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회적 흐름의 주류는 진료실이 아니라 이런 회의책상 위에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회원탐방 2
이태규원장님_인터뷰
실은 경제적인 이유도 크죠. 저는 여섯 형제 자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고 경남 통영에서 자랐습니다. 또한 결혼 후에는 외벌이입니다. 경희대 교수 재직 시절 경차를 몰고 다녔을 정도로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또한 저의 개인적인 성향도 교수직 보다는 개원의가 더 적합했을지도 모릅니다.조직내에서 조용히 지내는 것보다는 리더적 성향이 강했고,상하 수직관계에 대한 피로와 스트레스 등이 시간 낭비로 느껴졌고 이 때문에 개업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또한 제가 그동안 쌓아왔던 경력과 업적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개업을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국내의사로서 하버드 MGH 본원에서 정직 임상전임의 수련을 받은 사람은 매우 드문데 저는 그 곳에서 신경초음파학(neurosonology) neurovascular clinical fellow를 했었고 클리브랜드 클리닉에서는 주로 두통으로 임상전임의 수련을 했습니다. 이러한 임상전임의 경력은 대학보다는 개업을 했을 때 더 환자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개원 15년째입니다. 과거를 돌아볼 때 최근 개원 환경은 좋아지기도 했지만 나빠지기도 했습니다.과거 신경과 개업 시절에는 신경과에 대한 국민 인지도가 낮고 검사가 많지 않아서 많은 의사들이 개원을 접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신경과 의사로서 할 것이 많아졌습니다. VEMP, 신경심리검사, 최근에는 수면다원검사도 급여화되면서 환자들에게 다양한 검사를 제공할 수 있어 장점이 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만큼 비급여항목도 줄어들고 아울러 세무 노무 제도가 경영상 불리하게 변화 되어 경영상 어려움을 토로하는 신경과 의사도 많습니다. 개원을 하려면 의사로서 여러모로 진화를 해야한다고 봅니다.
또한 개원을 하게 되면 무엇을 얻고 무엇을 포기할 것인지 잘 생각해야 합니다. 개원 초기 손익분기점을 무사히 지나면 경제적 여유 및 직업적 장기 안정성은 얻지만 시간적 여유가 없어집니다. 인력관리, 세무 등의 경영상 제도적 스트레스가 많습니다. 개인적으로 동업은 피하셨으면 합니다. 작은 조직이나마 제 뜻대로 운영하여 빠르게 성장해가는 모습이 제가 생각하는 개업의 가장 큰 매력입니다.
신경과 전문의는 주말에 열리는 신경과 외 관심분야 학술대회도 적극 참여하여 신경학과 접목시키는 노하우도 필요합니다. 또한 모두가 문케어 등 의료계 전체 이슈에 적극 관심을 가지고 이해해야 변화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습니다. 훌륭한 리더쉽 못지 않게 회원 followship도 중요합니다.
Q. 신경과학회에 바라는 점이 있으신지요.
타과 전문의들에 대한 진료 능력에서 경쟁적 우위를 확보해야 하므로 신경과 의사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세부 분야 학술대회를 보면 대부분 금요일이나 토요일에 개최합니다. 일요일에 하는 학회가 많이 늘었으면 좋겠습니다. 주6일제로 근무하는 많은 전문의를 좀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학회와 신경과의사회가 역할 분담을 하면서 신경과적 문제 뿐만 아니라 문케어 등 크고 작은 의료계 이슈들에 적극적으로 대응을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수고하고 계시는 정진상 이사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치매안심센터 문제를 포함한 정부정책에 대한신경과학회와 대한신경과의사회가 잘 협력하고 대응하여 우리 회원들에게 피해가 없도록 능력을 보여주시길 기대합니다.
이태규 원장님은 진료뿐만 아니라 낙도(통영 원량초등학교 노대분교) 학교에 자전거와 함께 컴퓨터를 기증, 대한두통학회지에 실린 우수한 논문을 대상으로 상금을 수여하는 등 다양한 봉사와 지원을 해주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