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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 교수님 INTERVIEW



허균 교수님의 근황은?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인사드리는 허균입니다. 신경과학회에서 초대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는 2019년 8월 말에 정년퇴임 하였고 의과대학 의료인문학 강의교수로 두 학기는 강의만 하면서 모처럼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2020년 7월에 지인의 부탁으로 오산노인전문병원 원장으로 다시 환자를 진료하게 되었고 2023년 2월부터는 용인효자병원 진료원장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대학병원에서 다양한 환자들을 많이 경험했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노인요양병원에 와보니 새로운 세계가 기다리고 있더군요. 전국적으로 1,400여 개의 노인요양병원이 있으며 전체 입원 병상의 40% 정도나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1년 후인 2025년이면 초고령사회로 진입한다는 현실을 직접 현장에서 체험하고 있는 셈이지요. 올해로 저 역시 70대에 들어섰으니 머지않아 나 자신의 문제로 다가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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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전증, 치매 그리고 신경과


돌이켜보면 반세기도 더 지난 1973년도에 의과대학에 입학하였는데, 의예과 시절에 호기심으로 Freud와 Jung의 정신분석에 관심을 갖게 되어 이 분야 독서를 많이 하였던 것 같고, 본과에 올라와서는 자연스럽게 정신과 의사가 되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본과 3학년 정신과 실습을 하면서 환자에 몰입을 하다보니 점점 힘들고 괴로워져서 나 자신의 mental capacity의 한계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70년대는 지금처럼 약물치료가 정립되지 않아서 Psychodynamic approach가 주종을 이루던 시절이었고, 마침 Neuroscience가 새롭게 발달하던 시기이었기에 정신과 대신 신경과로 방향을 돌릴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 연세의대는 신경과가 독립되어 있지 않고 내과의 한 분야, 즉 신경내과로 되어 있어서 인턴 후에 내과를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general medical care를 심도 있게 배울 수 있었고 또 매우 보람이 있었습니다. 신경과를 좀 더 공부하려면 결국 미국에 가야겠다고 느껴서 ECFMG, VQE(지금의 USMLE)를 준비하였는데, 1981년 김기환 교수님을 통하여 미국 미네소타 대학 신경과 교수님이셨던 이명종 교수님과 연결이 되어, 1983년 J-1 Visa(한미문화교류)로 미네소타 대학 신경과 1년차 전공의로 도미할 수 있었습니다. 김기환 교수님과 이명종 교수님은 제 인생에 가장 커다란 전환점을 제공해 주신 영원한 mentor 이자 은인이십니다.

3년간 residency 하면서 seizure라는 현상이 매우 신비스럽게 느껴졌고, 당시는 EEG-Video monitoring으로 seizure semiology 연구와 Epilepsy Surgery가 획기적으로 발전하던 시기라 당연히 뇌전증으로 세부전공을 선택해서 2년 반 더 공부하고 1988년 말에 귀국하게 되었습니다, 이병인 교수님이 앞서서 길을 선도하고 계셔서 저에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1994년에 수원 아주대학교병원 창립멤버로 와서 학교내 보직을 맡게 되었는데, Alzheimer’s Dementia의 molecular genetics와 beta-amyloid hypothesis가 확립되던 시기였습니다. 현재 서울대학교 생화학교실 묵인희 박사가 미국에서 막 귀국하였을 때인데, 제가 신경과 연구강사로 영입하면서 아주대학교 의과학 연구소가 치매연구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습니다. 원인 불명으로 여겨지던 퇴행성 질환이 분자생물학으로 해결될 것으로 꿈을 꾸며 지켜보았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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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전증과 관련하여


저의 뇌전증에 대한 관심은 순수한 학문적 호기심으로 시작되었는데, 막상 한국적인 상황에서는 사회적인 편견과 차별로 환자들이 더 고통 받는다는 사실을 깨닺게 되었고, 강화도 장미회 진료봉사를 하면서 간질협회 활동에도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간질학회도 1996년 새롭게 창립되어 폭발적으로 발전하고 있었는데, 학회 내 사회위원회가 신설되어서 제가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보건복지부에서 장애인 범주확대 정책이 시행되고 있던 차라, 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드디어 2003년도에 간질장애인 등록이 가능해지게 되었습니다. 가장 절실하게 느껴졌던 것은, “간질”이라는 용어를 획기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올바른 사회적 인식과 권익향상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간질학회-간질협회 공동으로 “간질 개명위원회”를 구성하여 공모과정을 거쳐서 2009년 6월 “뇌전증“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도출하게 되었고, 국회, 의학계와 국어학회 등 여러 분야에 홍보하는 노력을 하게 되었습니다. 의학사전은 물론 표준국어사전에도 정식용어로 등재되었고 모든 국가 법률에도 간질이 뇌전증으로 대체되게끔 하였습니다. 드디어 2012년 6월 7일, 뇌전증학회(김흥동 회장) 주관으로 덕수궁에서 ILAE(국제간질학회)/IBE(국제간질협회) 회장단들을 초빙하여 “뇌전증 선포식”의 역사가 이루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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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간 적극적으로 동참해 주시고 지원해 주신 뇌전증학회와 신경과학회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그 후 1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 다양한 노력과 활동이 지속되고 있지만 뇌전증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아직도 개선의 여지가 너무도 많고, 특히 보건 정책적 우선순위는 다른 분야들에 비하여 매우 뒤쳐저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최근의 관심사는?


크게 두 가지로 말씀 드릴 수 있겠습니다.

첫 번째는, 올해 나이가 칠순에 접어들게 되면서 개인적으로 느끼는 감회입니다. 1950년대에 태어나 70년대에 의과대학을 다녔고 80년대 수련과정을 거쳐 1990년대 부터 본격적으로 전문의 활동을 해왔지요. 한국사회가 격동의 시기들을 거쳐오면서도, 경제적으로 발전하고 성장하여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았었던 좋은 시대에, 한국의료가 획기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에 참여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신경과학은 다른 어떤 분야에 비하여도 학술적으로 새로운 파라다임들이 제시되고 technology가 엄청나게 개발되는 시기였고, 우리나라 신경과 역시 양적으로 질적으로 보기 드문 성장을 이루었지요. 돌이켜보니 이러한 시기를 흥분과 기대를 가지고 보낼 수 있었다는 것이 참으로 커다란 행운이 아닐 수 없어요. 그러나 한 편으로는 이러한 발전에도 불구하고 뇌전증, 치매 등 신경과 질한들이 기대와는 달리 아직도 정복되지 않고 있고, 사회적으로는 급격한 고령화에 따라 더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로 부상하고 있지요. 인간의 능력의 한계를 또한 절감하고 있습니다. 뉴튼의 말대로 거대한 진리의 바다 앞에서 작은 조약돌만 찾아 다니고 있는 철부지 아이와도 같다고 할까요?

두 번째는, 정년퇴임 후 노인요양병원에서 일하면서 절실하게 느껴지는 문제인데, 바로 삶의 마지막을 어떻게 마무리 할 것인가? 즉 Good Death 또는 Well-dying이란 어떤 것일까? 하는 것입니다. 죽음에 관해서는 말기암 환자들을 돌보는 Hospice에서 주로 논의되어졌는데, 신경과 영역에서도 새로운 관심과 조명이 필요할 것으로 느껴집니다. 초고령화 시대에 죽음의 가장 커다란 원인은 바로 노화인데 궁극적으로는 뇌의 노화로 표출되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신경과 의사가 부딪히는 문제일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우리 병원이 300병상 규모인데 지난 달에만 15분의 노인이 운명을 달리 하셨어요. 가장 종말기(terminal stage)의 치매, 파킨슨 병, 뇌혈관질환에 관해서는 삼차기관에서 한평생 신경과의사 생활을 하면서도 별로 경험하지 못 했던 것 같아요.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임상 경과, 인간 본성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인지능력의 상실, 고통의 유무와 정도, 각 단계별 중재의 가능성, 의사로서의 수동적 또는 능동적 역할 등, Well-being에서 Well-dying으로 전환에 관한 적절한 논의와 지침이 부재한 것 같습니다. 주된 문제는 윤리적인 결정인데, 현재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연명치료결정법 만으로는 커버되지 않는 심리적 사회적 경제적 decision points들이 산재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머지않아 나에게 닥쳐올 실존적인 문제로 각인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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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학들에게 하고픈 말


제가 보기에는 지난 한 세대 동안 신경과 영역에 불어 닥친 변화는 첫째, 세부 전문화, 둘째, 과도한 기술 의존도, 그리고 결과적으로 셋째, 탈인간화(dehumanization) 현상이라고 하겠습니다. 물론 이는 헬스케어 전 영역에 해당하는 것이지요. 지식이 방대하게 늘어나게 되니까 sub-sub specialty가 생겨나고, 진단과 치료에 과거에는 없던 다양한 technology들을 사용하게 되면서, 나 자신의 좁은 분야만 추구해도 충분하다고 느끼게 되지요. 그러다 보니 환자의 전체적인 문제를 통합적으로 보는 General Neurology는 점점 사라져가는 것 같아요. 나 스스로를 고도로 전문화된 특정분야의 도구로만 인식하게 되고, 몸과 마음(brain)으로 삶을 체험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관심을 체득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지요. 특히 모든 신체분야의 문제들이 궁극적으로는 뇌의 문제들로 귀결되기 때문에, 신경과의사는 누구보다도 넓은 시야와 공감을 필요로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뜻을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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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국 교수님 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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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과를 선택한 이유


경북의대를 졸업하고 모교 병원에서 인턴을 하게 되었다. 평소 내 꿈은 개업이 아니라 무조건 교수를 하는 것이었다. 인턴을 돌면서 여러 가지 여건을 고려하여 외과계나 서비스 분야는 아예 제외하고 내과계를 전공하려고 하다 보니 우연히 신경과가 눈에 띄었다. 신경과는 내과도 아니고 외과도 아니지만 신경을 치료하면서도 의사들이 잘 모르는 분야라서 앞으로 상당히 특화가 될 수 있는 길 같이 보였다. 또한 신경과는 아직 신천지 상태라 전공만 하면 무난하게 교수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 당시 모교 병원에는 신경과가 없어 계명의대 신경과장 박영춘 교수님을 모시고 계명의대 1회들과 함께 신경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말초신경학을 전공하게 된 계기


전공의 수련을 마치고 계명의대 신경과에서 3년 동안 연구강사를 하는 동안 서정규 교수님을 모시고 말초신경학에 입문하게 되었다. 그후 서정규 교수님께서 경북의대로 가시고 나선 내가 계명의대 교수로 말초신경학을 담당하게 되었다. 나중에는 미국 알라바마대학 신경과의 오신중 교수님을 모시고 말초신경학과 임상신경생리학의 넓이와 깊이를 더 배울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평생 말초신경학을 전공하게 되었다. 말초신경을 전공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임상신경생리학과 통증 분야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30년 교수 생활


계명의대에서 조교수 승진을 눈앞에 두고 있을 때 은사이신 박영춘 교수님의 명에 따라 대구가톨릭의대에 가서 신경과를 창설하게 되었다. 따라서 나의 30여 년 교수 생활은 오롯이 대구가톨릭의대에 신경과를 만들고 발전시키는 일로 점철되었다. 매일 교육, 연구, 진료, 봉사에 매진하다 보니 어느새 교수 생활 30년이 흘러 정년퇴직을 하게 되었다. 신경과 개설 초기 나 혼자 있을 때는 많이 힘들었지만 세월이 흘러 이젠 어엿하게 자리를 잡은 대구가톨릭의대 신경과를 보면 신경과를 창설한 사람으로서 감회가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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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 퇴직 후 개원한 이유


정년퇴직이 가까워 오자 제2의 인생을 설계하게 되었다. 퇴직 후에는 봉직의로 가느냐, 아예 매사를 접고 쉬느냐, 아니면 개업하느냐 3가지 밖에는 다른 길이 없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서는 다른 병원에 봉직의로 가기는 힘들고 그렇다고 마냥 놀기에는 아직 힘이 남아도는 상태였다. 따라서 주위의 반대도 심했으나 남들은 재능기부도 하고 봉사 활동도 하는데 무엇을 못하랴 싶고 또한 평생 배우고 익힌 경험을 더 나누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서 우리 건물 3층을 비워서 개업을 하게 되었다. 개업 초기에는 대학병원과 여러 가지로 근무 여건이 달라 많이 힘들었으나 개업하고 일년 반이 지나니 이젠 자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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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들에게 남기는 말


내 경험상 나처럼 나이가 들어서는 여러 여건상 개업은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젊은 후배들은 미리 자기의 진로를 정하면 좋을 듯하다. 장래 희망이 교직이나 개업이냐에 따라 삶의 자세도 다르고 준비 사항도 다르다. 개업을 하려면 미리 무언가 특화할 생각을 하고 평소 철저히 준비를 하는 것이 좋다. 개업은 춘추전국시대를 살아가는 것과 비슷하다. 따라서 틈만 나면 개업을 잘하고 있는 여러 병원에 가보고 두루두루 미리 실전을 대비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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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증신경과 의사 열전을 마치며 
통증특임위원회 주인수 위원장 소회

글_주인수(제38-41대 대한신경과학회 통증특임위원장, 아주대병원, 신경과)


2013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제4차 International Congress of Neuropathic Pain에 참석한 것이 통증 분야에 첫 발을 디딘 시점으로 본다면 벌써 10여 년의 짧지 않은 세월이 지났습니다, 신경근육질환 분야를 전공하다 보면 통증 환자를 자주 접하게 되고 이것이 제가 통증, 특히 신경병통증을 포함하는 만성통증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통증 환자를 진료함에도 불구하고 통증의 체계적 평가와 적절한 치료가 제공되고 있는지 의구심이 마음 한 편에 늘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또한 이런 문제는 제 개인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다행히도 2020년 3월 대한신경과 이사장으로 부임하신 홍승봉 교수님께서도 신경과 영역에서 통증의 중요성을 강조하셨고, 그해 4월 통증의 체계적 관리 및 교육을 위한 통증특임위원회를 구성하게 되었습니다. 위원회의 가장 급선무는 다양한 분야에서 근무하는 신경과의사들이 통증 환자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적절히 치료하고 있는지, 혹은 수련동안 통증 교육을 제대로 받았는지에 대한 기초자료를 확보하는 것이었습니다. 설문조사 결과를 간략하게 요약하면, 신경과의사에게 있어서 통증은 매우 중요한 분야이기 때문에 통증교육이 절실함(응답자의 97%)에도 불구하고 통증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85%)고 하였습니다. 이를 근거로 통증 교육에 매진하기 위한 방안을 고안하고 실천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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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년 동안 통증특임위원회에서 주관한 통증교육으로 대한신경과학술대회에서 시행한 통증 관련 강의나 세미나 등이 있었고, 신경과 회원들에게 통증 환자의 간접경험 혹은 통증의 기본적이고 최신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 매월 CME (continuous medical education) 레터를 송부하였습니다. 또한 통증 실기교육에 대한 절실한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일 년에 4차례 통증실기교육을 실시하였습니다.

▶ 통증 CME(continuous medical education) 보러가기alt


두경부, 상지, 허리와 몸통, 그리고 하지로 구분하여 빈도가 높고 임상적으로 중요한 통증을 다루었으며, 신경병통증뿐만 아니라 근골격계통증의 효과적 치료를 위해 초음파기기 사용 방법과 도수치료도 함께 포함하여 교육하였습니다. 통증실기교육에 대한 회원들의 관심과 참여는 오픈런을 방불한 정도로 뜨거웠고 교육에 대한 만족도 또한 매우 높았습니다. 2023년부터는 일 년에 한번은 전공의나 전임의 등의 통증 초보자를 위한 기초실기교육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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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직도 미흡한 점이 많습니다. 우선 회원들이 가장 선호하는 통증실기교육이 서울에서만 이루어지기 때문에 지방에 근무하시는 분들의 참여 기회가 상대적으로 박탈당하는 점과 실기교육의 특성상 한 번에 많은 사람이 참여할 수 없다는 점이 항상 아쉬웠습니다. 이러한 제한은 진료에서 통증실기를 다루는 통증전문가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실과 실기교육을 위한 초음파기기 이용이 원활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통증특임위원회에서는 대한신경과학회의 경제적 지원을 받아 매년 2명씩 통증실기전문가 양성을 위해 유수한 통증 관련 해외학회나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통증에 관심을 가지고 학회 차원에서 통증교육을 주도한 지가 이제 4년이 막 지났습니다. 일차진료의사와 신경과를 방문하는 통증 환자의 비율이 각각 20%, 25% 이상임을 감안하다면, 그리고 신경과 이외 마취통증의학과, 신경외과, 정형외과, 재활의학과 등도 통증치료에 적극적인 점을 고려해 볼 때 통증은 반드시 다루어야 할 중요한 증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무한 경쟁 속에서 신경과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수련기간부터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통증교육을 도입하여 유능한 통증전문가로 양성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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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물 한 방울, 풀 한 포기 없는 통증의 황무지에서 어렵게 이제 막 통증교육이란 나무의 여린 싹을 틔우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가 계속 관심을 가지고 돌봐 주지 않는다면 다시 흔적 없이 사라질 것이지만, 간절히 바라건대 신경과학회와 회원들의 열정적인 관심과 격려, 지원을 자양분 삼아 레드우드처럼 무성한 나무가 되어 많은 통증 환자에게 안식처를 주기를 희망합니다. 만성통증은 신경과 의사 이외 그 누구도 만족스럽게 치료할 수 없음을 저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우위적 자신감을 가지고 누군가가 앞으로 통증특임원회를 잘 이끌어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그간 통증특임위원회의 활동에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에게 지면을 통해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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