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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 삶이 있다’ - 산티아고 순례길 도보여행-

글_석승한(원광대산본병원 신경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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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과 학회에서 산티아고 순례길 도보여행에 대한 기행문 요청을 받고 어떻게 해야 하나 한동안 고민했었다. 다녀온 시간이 2018년 7월이었으니 어느덧 1년 6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나기도 했고 다시 바쁜 일상을 지내면서 생생하던 36일간 도보 여행의 경험과 느낌이 어렴풋이 먼 기억 속으로 잠겨 버렸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써 글쓰기를 시작했지만 심력과 필력이 부족한 탓인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몇 번이고 접었다. 다행히도 2019년 8월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온 후 우연한 계기로 ‘길 위에 삶이 있다’라는 제목으로 산티아고 전 여정의 순례길 글·포토 에세이를 발간하면서 쓴 글에 도보여행 당시의 마음이 오롯이 담겨 있다는 생각에 이를 첨삭하여 싣기로 하였으니 독자 여러분들의 너그러운 이해를 부탁드린다. 또한 최근에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기는 책을 포함한 다양한 매체로 이미 넘쳐나고 있고 지극히 개인적 소회를 쓴 것이니 혹시 이 글이 기대하는 바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너무 나무라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여정(旅程)’ 사전적으로는 여행의 과정이나 일정을 의미한다. 흔히 우리가 살아가는 것을 삶의 여정이라고 말하곤 한다. 이것은 아마도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마치 긴 여행의 과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몇 년 전 파울로 코엘료가 쓴 ‘순례자’를 읽고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하여 알게 되었다. 이때부터 언젠가 한 번 그 길을 꼭 걸어 보고 싶다는 막연한 바람이 있었다. 그렇지만 속으로는 ‘정말 갈 기회가 있을까?’라고 생각했었다.


지난 십수 년 동안 좋은 인연들의 도움으로 어렵고 힘든 일들을 잘 헤쳐 나왔음을 항상 감사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부담이 컸던지 마음을 챙기려고 노력하는 것만으로는 견뎌내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그 부담은 신체적 변화로 나타났고 부정맥이 생기고 불면증으로 괴로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급기야 이런 상황을 더 이상 견뎌낼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이 휘몰아쳤다. 가능한 빠른 시간 내에 모든 일들에서 떠나야겠다고 생각하고 애썼지만 1년이나 지나서야 겨우 무겁게 지고 있던 책임이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현실과 거리를 두고 나니 그 때는 꼭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어서 반드시 했어야 한다고 믿었던 많은 과정들이 당시와는 다르게 인식되었다. 무엇 때문에 그 일들을 해내야 한다고 그토록 애를 태웠을까? 몸을 상하게 하면서까지 견뎌내야 했을까? 더 일찍 스스로 벗어날 수 없었을까? 같은 자책하는 질문들이 마음속을 맴돌았다. 우여곡절 끝에 몸 상태는 일정 부분 안정을 찾았지만 무언가 공허한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동안 준비해 왔던 이런저런 계획들은 가족과 지인들의 권고가 많았던 만큼 미루어 놓고 우선 건강을 회복하는데 집중하기로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버킷리스트만으로 간직하고 있던 산티아고 순례길로 홀연히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산티아고로 향하는 순례길 코스는 출발지에 따라 여러 코스가 있다. 이 중에서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 프랑스 생장피드포(Saint-Jean-Pied-de-Port)에서 해발 1,410m 피레네 산맥을 넘어 산티아고로 향하는 프랑스 길, 일명 나폴레옹 루트로 결정하였다. 여행사의 도움을 받아 일정을 짜고 서둘러 순례길 여행서를 구입하여 권장하는 준비물을 확인하였다. 여행용 배낭, 마더스틱, 평소 신던 등산화와 운동화, 슬리퍼, 스포츠용 기능성 옷, 상비약 등 여행에 필요할 것으로 생각되면 가능한 충분히 -물론 며칠 지나지 않아 불필요한 것을 너무 많이 가져왔구나 하고 후회하게 되었지만- 가져가기로 했다. 이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후 순례자들이 많아지면서 비용을 지불하면 출발지에서 원하는 곳까지 짐을 옮겨주는 ‘동키서비스’가 있다는 정보를 알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출발하기 전까지 20일 동안 시간을 내어 매일 10km 정도 걸으면서 오래 걷기를 준비하였다. 하지만 적게는 20km에서 많게는 30km까지 매일 걸어서 800km가 넘는 산티아고까지 걷는 순례길은 이전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힘들고 험난한 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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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티아고 순례길 (Camino de Santiago) - 프랑스 길 (French way)의 지도와 고도


프랑스 생장을 출발하고 일주일 동안은 발에 물집이 잡혀 터졌고 무릎관절을 포함한 온몸 구석구석에 통증이 찾아와 저녁마다 진통제를 먹지 않으면 잠이 들지 못할 정도로 견디기 힘들었다. 내일 아침에 다시 걸을 수 있으려나 하는 두려움이 있었지만 신기하게도 순례길을 걷는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몸은 단단해지고 마음이 맑아짐을 느꼈다. 몸이 오래 걷기에 적응이 된 후부터는 낯선 출발에 대한 두려움이 어느새 새로운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행복한 설렘으로 명치 부위가 울렁거렸다. 매일 마주하는 그 길은 하루도 같지 않았다. 심지어 같은 길마저 걷는 시간에 따라, 날씨에 따라, 혼자 걷을 때, 함께 걸을 때 모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이뿐 아니라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작은 변화들까지도 매 순간 온전히 집중할 수 있어서 마치 산티아고로 향하는 길과 내 마음 그리고 몸이 자연 속에서 하나가 된 듯이 행복하고 신비한 경험을 하였다. 가끔은 이렇게 힘든 이 길을 왜 걷고 있는지에 대하여 나 자신에게 묻곤 했다. 중세부터 이어져 온 이 길을 깨달음을 얻기 위해 걸었던 순례자들의 절실함, 모든 것을 버리고 삶의 진실을 찾고 싶어 했던 그런 간절함을 오롯이 체감할 수 있었고, 내가 걷고 있는 이유도 역시 삶에 대한 분명한 의미와 가치를 찾고 싶은 강열한 내적 욕구였음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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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가 뜨는 풍경은 희망찬 찬란함이지만 해가 지는 모습은 더욱 풍요롭고 아름답다.
오세브레이로(O'Cebreiro)에서 석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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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완견과 함께 여행하는 순례자


산티아고로 향하는 순례길을 걷는 것은 기억 속에 남아있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삶의 여정을 생각해 보고 하나하나 정리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어떤 순간은 슬퍼서 눈물이 났고, 어떤 순간은 화가 났으며, 또 어떤 순간은 행복하고 감사한 기억들이 분수처럼 솟아났다. ‘용서의 언덕(Alto de Perdon)’에 올라서는 그 동안의 모든 잘못을 용서받은 듯했고, 그늘 한 점 없는 땡볕에 끝없이 펼쳐진 메세타(meseta) 평원을 힘없이 걸으면서 나의 업보(karma)를 깨닫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렇게 떠올랐던 변화무쌍한 감정들 중에서 서운함과 원망은 그 순간 그 길에 고이 묻어두었고 산티아고를 떠나 올 때는 오로지 행복하고 감사함만을 간직하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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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서의 언덕(alto de perdon) 순례자 조형물


나는 지금 편안하다. 작은 일에도 감사할 수 있으니 행복하다. 새로운 용기가 생겼으며, 물론 잠도 잘 자고 있고 심장박동도 정상적이다. 앞으로 더 성숙하고 행복하게, 시절인연(時節因緣)을 따라 서두르지도, 욕심내지도 않고, 묵묵히 최선을 다해서, 자신 있고 당당하게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갈 것이다. 마치 하루하루 힘들지만 행복하게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듯이, 그 가운데 나와 함께 하는 이들에게 위로가 되고 조금이나마 세상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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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없이 펼쳐진 흙길을 걷다 보면 저절로 상념에 빠지게 된다.


오늘도 나에게 주어진 현재(the present)가 삶이 나에게 준 확실한 선물(a present)이라는 사실을 저절로 깨닫게 해 준 산티아고 순례길 여정의 경험과 감동을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든 분들도 체험해 볼 수 있기를 바란다. 특히 바쁘고 정신없는 일상 속에서 몸과 마음이 힘들고 지쳐서 삶의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다면 ‘홀로’ 멀리 떠나보길 권한다. 일상이라는 스스로 정해놓은 궤도를 벗어나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막연한 두려움을 잠시 밀어내는 것, “세상 밖은 위험해”라는 프레임을 벗어나는 것 차체만으로 한층 성숙해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고 더욱 풍성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도 어디론가 떠나게 될 날을 꿈꾸고 있다. 그곳이 산티아고가 아닌들 어떻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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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에 도착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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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전 로마인들이 세상의 끝이라 생각했던 피니스테레(Finisterre)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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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란색 화살표를 따라 걷는 산티아고 순례길(Camino de Santi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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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entional neuroradiology

글_백장현(강북삼성병원_신경과)


1.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강북삼성병원 신경과에서 근무하고 있는 백장현입니다. 강북삼성병원에서 인턴, 레지던트 수련을 했고요. 군 복무 이후 세브란스병원 영상의학과와 신경과에서 전임의를 했습니다. 이후 국립중앙의료원 신경과를 거쳐 2019년부터는 강북삼성병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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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어떻게 생긴 사람인지는 알려 드려야 할 것 같아 사진을 뒤졌는데, 제 핸드폰에는 제 얼굴이 한 장도 없네요.
학회 갤러리에서 한 장 찾았습니다^^


2. 이 힘든 분야를 선택한 계기가 있으신지요?


솔직히 어떤 낭만적인 계기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제가 신경과 전공의였던 때는 지금과 달리 카테터와 약물을 이용해 혈전을 "용해"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제 기억에 당시의 치료 결과는 지금처럼 드라마틱하지는 않았습니다. 인터벤션(Intervention) 시술이 급성 뇌경색의 치료에 있어 아주 중요한(critical) 부분이었다고 얘기하기는 솔직히 어렵겠네요. 그렇다고 제가 나름의 혜안이 있어 인터벤션 시술과 관련한 어떤 미래를 본 것도 아닙니다. 다만, 제가 동경했던 것은 응급 상황에서의 "논리적인 의사 결정"과 이를 바탕으로 한 어떤 "행동"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좀 이것 저것 따지는 성격입니다. 그냥 루틴대로 하는 것을 싫어해요(^^;). 응급실에서 일어나는 여러 상황 중 인터벤션 시술과 관련된 이슈와 그 의사 결정 과정에서 재미를 느꼈던 것 같습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인터벤션 시술이 가장 구체적이고(specific, 능동적인 선택에 의한 규정된 조작) 배타적인(exclusive, 아무나 할 수 없는), 매력적(attractive, 어쩌면 환자의 예후도 바꿀 수 있는) "행동"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막연한 동경을 가지고 시작한 셈인데, 이내 곧 분위기가 바뀌었습니다. 혈전제거술(mechanical thrombectomy)이 급성 뇌경색의 표준치료로 자리 잡음으로써 엄청난 임상적 파급력을 불러왔고, 인터벤션 시술로 환자의 삶이 달라지는 것을 직접 목격하게 되면서, 막연한 동경은 현실적인 만족감으로 이어졌습니다.

           

3. 중재적 시술을 하면서 힘들었던 점, 그리고 좋았던 점 있으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신경과 의사가 직접 인터벤션 시술을 하게 됨으로써 갖는 소회를 물어보시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만족이라고 해야 할까요? 환자의 인생을 바꾸는 중요한 치료의 "한 중심"에 서 있다는 점을 꼽고 싶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좀 오글거리네요. 저는 종종 인터벤션 시술을 영화에 비교하고는 하는데요. 성공적인 인터벤션 시술이 한 편의 영화라면, 그 영화를 즐기는 방법은 저마다 다를 겁니다. 제작자로, 감독으로, 배우로, 혹은 관람객으로, 영화를 즐기는 방법은 다양하겠지요. 다만, 저는 기획하고 연출하는 것만으로는 성이 차질 않는가 봅니다. 영화의 "감독 겸 배우"가 되는 것이 제가 영화를 즐기는 방법입니다. 직접 시술을 하니 배우 역할도 하고 있는 셈이랄까요?

인터벤션 시술을 영화에 빗대면서 하고 싶은 얘기 또 하나는, 주연급 배우가 보통 먼저 눈에 띄지만 각본을 쓴 사람, 촬영한 사람, 의상이나 무대 등을 준비한 사람, 심지어는 제작비를 댄 사람 등 저마다 역할이 있다는 것입니다. 각자 하는 일은 달라도 영화는 참여한 모두의 것이며 저마다 긍지와 자부심을 갖습니다. 잘 만들어진 영화의 공은 오롯이 모두에게 돌아가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인터벤션 시술의 결과는 신경과 의사 혹은 시술자만의 성과가 아닙니다. 시스템을 떠받치고 있는 모두의 것입니다. 방사선사, 간호사, 프로세스에 관여하는 모든 병원 직원들 간에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하고 잘하고 있다는 자신감과 격려가 필요합니다.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를 위한 과정과 그 연대감은 일반적인 진료 현장에서 느끼지 못하는 또 다른 재미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벤션 술기나 도구들은 계속 빠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시술은 보다 안전해지고 있고, 많은 연구 결과들이 나오면서 시술 결과도 점차 좋아지고 있습니다. 덕분에 인터벤션 시술로 얻는 재미와 성취감은 점점 더 커지는 것 같습니다. 인터벤션 시술을 처음 시작할 때보다 훨씬 더 재미있어졌고, 그런 성장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 같은 기대도 좋은 점이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최근 들어 신경과 의사의 인터벤션 시술 저변은 조금씩 넓어지고 있고, 이에 따라 각 병원에서의 처우들도 서서히 좋아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아직 현실적인 어려움들은 분명 존재하겠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워낙 좋은 환경에서 일해 왔기 때문에 제가 유난히 더 힘들다고 얘기하기는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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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중앙의료원 근무 시절입니다(2016).
왜 찍는 거지 하고 노려봤었는데, 이렇게 쓸 일이 생기네요.


4. 주말도 없고 밤낮이 없을 텐데, 병원에서의 일과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이미 주변에 인터벤션 시술하시는 신경과 선생님들이 많이 계셔서 잘 아실 것 같은데요. 인터벤션 시술을 한다고 해서 다른 선생님들과 일과가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외래 진료는 같은 수준으로 보고 있고요. 그래도 다른 교수님들께서 상당히 배려해 주셔서 주말 외래 진료는 빼 주셨고, 제가 시술 당직이 아닐 때는 시술 환자는 자체적으로 해결해 주십니다. 다만, 시술 주간에는 좀 얽매일 수밖에 없는 게 사실입니다. 그나마 저희 병원에는 시술자가 저를 포함하여 3명(영상의학과, 신경과, 신경외과)이나 있어서 상황이 꽤 좋은 편입니다.

외래 진료가 없는 낮 근무시간의 응급 시술은 가급적 제가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영상의학과 교수님께서 허락해 주셔서 기회가 많은 편이고요. 현재는 1주일에 3일은 외래진료가 없어서(시술을 위해서 이틀간에 몰아넣었습니다!) 신경과 환자들 뇌혈관 조영술도 모두 직접 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로 배려해 주심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오후에는 환자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는 편입니다. 말이 많은 스타일이라 오후에 혼자 병동에 올라가 1시간 이상 머무는 일이 많습니다. 환자/보호자와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나누려고 하는데, 요즘은 시간 내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 아울러 전공의 선생님들이 환자들에게 설명할 기회를 뺏는 것 같아서 좀 고민이기도 합니다.

           

5. 중재적 시술 중에서도 교수님이 더 관심있어 하는 분야는 무엇인가요? 자세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인터벤션 시술을 하니까 어떻게 하면 시술을 더 잘할 수 있을까 고민해야 하는데, 사실 급성 뇌경색 환자에게 인터벤션 시술이 필요한지에 대한 임상적 판단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특히, 최소한의 뇌영상과 신경학적 진찰만을 바탕으로 한 임상적 결정(clinical decision) 과정을 강조합니다. 응급 상황에서의 뇌영상에 대한 접근성은 이미 매우 좋아졌고, 고급 뇌영상(advanced imaging)도 응급실에서 쉽게 얻을 수 있게 되면서 임상적 결정 과정이 많이 객관화되었습니다. 증거들이 객관화되면서 판단에 대한 고민은 분명 줄어들었지만, 신경과 의사로서의 고민은 항상 남아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고민들에 대해 질문 던지기를 좋아하고, 아울러 이런 의학적 판단을 포함한 환자의 현 상태, 치료 목표 등을 환자와 보호자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방법에 관심이 많습니다.

           

6. 이 길을 선택하려고 하는 후배 의사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무엇보다 망설이지 말라고 얘기하고 싶네요. 신경과 의사가 인터벤션 시술을 깊이 이해하는 것은 급성 뇌경색의 진료 및 치료 과정의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인터벤션 시술을 너무 쉽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뉴로인터벤션은 아이덴티티가 분명하고 상당히 체계화된 독립적 학문입니다. 뉴로인터벤션이 지금처럼 자리 잡고 발전한 것, 좁게는 신경과 의사가 인터벤션 시술을 할 수 있게 된 데에는 많은 영상의학과 선생님들의 노고와 포용이 그 바탕에 있습니다. 이에, 수련을 시작하려고 한다면 영상의학과 선생님들에 대한 존경과 경외심이 있어야 합니다. 신경과 의사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항상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하고, 신경과 수련을 받을 때 보다 더 진지한 자세로 임해야 합니다.

제가 인터벤션 수련을 시작할 때 전국에 10명 남짓이던 신경과 인터벤션 시술 의사의 수는 이제 꽤 많이 늘었습니다. 요즘은 어렵지 않게 주변에서 인터벤션 시술하시는 신경과 선생님을 찾아볼 수 있지요. 고민이 있다면 연락해 보기를 권해드립니다. 어디로 연락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저에게 연락하여도 좋구요(janghyun.baek@gmail.com). 신경과학회(수련위원회 등)로 연락하여도 도움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분명 힘든 일입니다. 그리고, 그런 어려움의 대부분은 신경과 출신이기에 갖는 인터벤션에 대한 학문적 어려움이기보다는 당직 근무를 포함한 시술 여건이나 병원 내에서의 입지 등 보다 현실적인 것들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쩌면 최근 급변한 진료 환경이나 사회 분위기는 이런 응급 라이프(?)와는 어울리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ㅜ.ㅜ). 하지만, 누가 뭐라해도 뇌졸중 환자들과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것은 신경과 의사이며 의식 있는 신경과 의사들이 계속 남아 있는 한 그 가치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뇌졸중 환자를 위한 선생님들의 수고로움은 불평등이 아니라 신경과 본연의 가치를 지켜내기 위한 무기입니다. 혹시 그 과정에 불공평한 부분이 있다면 바로잡아야 할 것이고, 우리가 함께 바꿔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도 전국 각지에서 뇌졸중 환자들을 위해 밤낮없이 수고하는 모든 선생님들께 깊은 공감과 응원을 보냅니다. 그저 작은 일을 시작한 저에게 학회에서 이렇게 몇 마디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처럼 앞으로도 많은 지원과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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