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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put image    교수님의 정년을 축하드립니다. 대한신경과학회 이사장까지 하시고 세브란스병원을 이끌어 오셨는데 신경과학회 일원으로서 수고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정년을 맞이하신 것에 대한 소감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큰 대가 없이 건강하게 정년을 맞이하게 된 것이 가장 기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신경과가 제가 신경학에 입문하였던 34년 전에 비하여 양적 질적으로 괄목할 만큼 비약적인 발전과 인프라를 갖추게 된 것이 감개무량하면서도 자랑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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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put image    말초신경질환을 전공하시고, 교직에 남게 되신 이유가 있으신지요?


신경학을 전공하게 된 것은 모두 작고하신 김기환 초대 이사장님 권유 때문입니다. 제가 내과 전공의를 마치고 1984년 1월에 내과 전문의 시험을 볼 때 과도기를 거쳐 본격적인 신경과 전문의 과목이 신설되었습니다. 당시 제 동기인 정신과 수료 전공의들은 신경과와 정신과 양과 전문의 시험을 치르고 양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던 시절입니다. 아무튼 저는 내과 전문의를 취득하고 전방 사단에서 군의관으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김기환 교수님께서 연락을 주셨습니다. 내과 전공의 말년 시절에 6내과(신경과 분야)를 고정하여 근무하였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 시절 저를 좋게 보셨던지 교수님께서 신경과를 지원하라고 말씀 주셔서 신경과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말초신경학을 전공하게 된 동기는 주로 선우일남 교수님 때문입니다. 신경과 질환에 해박하시고 근전도 검사를 통해 진단에 명쾌하게 접근하는 모습을 보고 이 분야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교직에 남게 된 것은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당시에는 신경과가 분리 독립하여 초석을 다져가는 초창기 시기였습니다. 아무래도 교수직에 여력이 있었던 시절이기 때문에 저 같이 부족한 사람도 교수직에 남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같으면 어림도 없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input image    세 가지 질문을 드리려고 합니다. 기억에 남는 환자, 기억에 남는 제자, 교직 생활 중 기억 남았던 일 등에 대해서 말씀 부탁드립니다.


기억에 남는 환자는 많이 있습니다. 제가 진료를 잘 하지 못했던 환자들이어서 늘 죄송스러운 마음입니다. 그중 한 분을 소개하자면 70대 할머니였는데 우측 눈꺼풀이 쳐져서 내원하였습니다. 동안신경 마비가 있었고 우측 해면정맥동 종괴가 사골동까지 침범하고 있어서 이비인후과 협진 하여 조직 생검을 시행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조직 검사하는 날 갑자기 수술방에서 저를 호출하는 방송이 나왔습니다. 직감적으로 무엇이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연락을 해보니 생검 도중 환자가 의식을 잃고 우측 상지 및 양하지 마비가 발생하였다고 보고를 받았습니다. 바로 중환자실로 환자를 옮기고 검사를 해보니 지주막하 출혈이 확인되었습니다. 생검 도중 뇌동맥류가 파열된 것입니다. 환자분은 집중 치료 이후 수 일 지나서 의식을 되찾았는데 그때 저에게 일성이 “이 놈아, 내 팔다리 내놔라”하는 말씀이셨습니다. 그 이후 한달을 더 지내시다가 재출혈로 사망하셨습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생검 조직에서 의외로 간암이 확인되어 보호자분들께 간암이 뇌로 전이되었다고 말씀드리고 병원장님께 말씀드려서 병원비를 탕감하는 조건으로 잘 해결되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아직도 제 귀에 “이 놈아!”라는 환자분 말씀이 맴돕니다.

기억에 남는 제자는 이상운동질환을 전공한 이필휴 교수입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이필휴 교수는 처음에 아주대학교로 발령을 받아서 잘 근무하고 있었는데, 연세의대에서 스카우트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주임교수를 제가 맡고 있었는데 아주대 허균, 주인수 교수뿐만 아니라 의대 동기였던 아주대 의료 원장과 학장도 왜 잘 근무하고 있는 훌륭한 인재를 뽑아 가냐고 추궁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벌써 1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그분들의 입장을 생각해 보면 지금도 너무도 죄송한 마음이 들어서 기억에 남는 제자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교직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 대한신경과학회와 연관된 활동입니다. 제가 내과 전공의 시절에 김기환 교수님이 대한신경과학회 이사장이셨고, 선우일남 교수님이 총무이사를 역임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확정된 직함은 없었지만 총무이사보로 활동하기 시작하여 대한신경과학회 부이사장, 이사장, 고시위원장 등으로 학회 활동을 활발히 하였던 것과 2018 AOCN 학술위원회 위원장을 맡아서 학술위원 여러분의 도움으로 좋은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많은 참가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input image    김승민 교수님께서 요즘 관심있는 분야는 어떤 것인지요?


가장 관심 있는 분야는 신경과의 분리 독립에 많은 공헌을 하신 김기환교수 기념사업회를 운영하는 것입니다. 기념사업회는 2021년 춘계학술대회부터 김기환교수 연구자상을 수상하기로 학회와 협약을 맺은 바 있습니다. 그 상금은 오백만 원인데 온전히 기념사업회의 모금 활동을 통해서 재원이 마련되고 있어서, 이러한 재정 확보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input image    교수님의 정년 후의 삶은 현재 남은 교수들뿐만 아니라 다른 신경과 의사들도 궁금해합니다. 향후 계획이 어떻게 되시는지요?


저는 2020년 8월 31일 자로 정년 퇴임을 하고 감사하게도 2020년 9월 1일부터 용인세브란스병원 신경과 진료교수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이 직분을 유지할지 모르겠으나 용인세브란스병원 신경과가 뿌리내리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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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put image    마지막으로 후학들에게 특히 신경과 의사의 길로 들어선 전공의들에게 멋진 신경과의사가 되지 위한 당부의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무엇보다 횡적 종적으로 신경계 전체를 진찰하여 병소 부위를 유추해 내는 멋진 학문에 매료되었으면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경학뿐만 아니라 내과뿐만 아니라 타과 지식도 많이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론적으로 신경과 의사는 의사 중에 의사라는 자존감을 잊지 마시기를 당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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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put image    교수님의 정년을 축하드립니다. 대한신경과학회 회장, 영호남 지회 이사장까지 하시고 영남대병원을 이끌어 오신 산증인이신데 신경과 학회 일원으로서 수고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정년을 맞이하신 것에 대한 소감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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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잊지 않고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1988년 영남대학교 의과대학 신경과학교실에서 전임교수로 출발한 지 어언 32년여가 흘렀네요. 이렇게 정년을 맞고 보니 지금까지 보낸 학교, 병원, 학회 생활들이 파노라마처럼 떠오르네요. 아시다시피 저희 학회가 주변의 경계로 발족이 많이 늦어져 1982년에 겨우 출범하였지요. 제가 전공의 시절에는 학회가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등지의 강당에서 개최되었는데 당시에는 회원 숫자가 얼마 안 되어서 제일 윗분들도 모든 전국의 전공의들을 다 알아보셨죠. 학회를 마치고 나서 저녁 리셉션이 벌어지면 돌아가신 古명호진 교수님께서는 그 자리에서 지갑을 열어 수표를 의국장한테 주시기도 했죠. 지방에서 올라온 전공의들을 대접 잘 해주라고요. 그래서 지금까지도 학회에 참석하면 윗분들이 먼저 알아봐 주시곤 합니다. 요즘은 학회에 올라가면 너무나 발전되고 방대해진 학회의 위상에 뿌듯한 한편으로 격세지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렇게 큰 영광을 누리게 되어 모든 회원분들께 지면으로나마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input image    말초신경 질환을 전공하시고, 교직에 남게 되신 이유가 있으신지요?


제가 1984년 서울을 제외한 타지역의 첫 신경과 전공의로 영남대학병원 신경과에서 당시 주임교수이셨던 박충서 교수님 아래에서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학창 시절에도 신경과에 대한 수업자료도 얼마되질 않았고 또한 임상경험이 거의 없으신 신경정신과(현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분들이 강의를 했습니다. 그렇게 얄팍한 신경과적 지식만 가지고 혼자 응급실, 병실, 중환자실을 쫓아다니느라 이제 생각하면 정말 힘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다행히 당시 내과 전문의를 취득하시고 다시 신경과의 길을 가려하신 변영주(당시 전임강사) 교수님이 도움을 매우 많이 주셨습니다. 새벽에 전화를 해도 다 받아 주셨으니까요. 그렇게 수련을 마치고 1987년 전문의 자격을 취득 후 저는 Faculty의 길을 가고자 계명대학교 동산병원 신경과 박영춘 교수님 아래에서 1년간 첫 펠로우 생활을 하였지요. 마침 그 해에 서정규 교수님께서 미국 연수를 떠나셔서 제가 대신 근전도 및 유발전위 검사실을 맡아서 운영을 하였던 게 말초신경질환을 전공하게 된 첫 이유였던 것 같습니다. 물론 학창 시절부터 정형외과와 스포츠의학 쪽으로도 관심이 있었던 것도 하나의 요인이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마침 영남대학교 의과대학 신경과학 교실의 전임교원 T/O가 나와서 1988년부터 교직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당시 두 교수 분이 뇌졸중, 파킨슨병, 다발성 경화증, 뇌전증 등 모두 중추신경계질환을 주로 보셔서 제가 또한 당연히 말초신경계 질환을 전공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본 교실의 근전도 및 유발전위 검사실 세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여 1991년 미국 앨라바마주 버밍햄에 있는 UAB Hospital의 오 신중 교수님 LAB에서 연수를 다녀왔지요.



input image    세 가지 질문을 드리려고 합니다. 기억에 남는 환자, 기억에 남는 제자, 교직 생활 중 기억 남았던 일 등에 대해서 말씀 부탁드립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분은 제가 전공의 1년차 4월에 처음으로 만난 50세 남자 중증 근무력증 환자입니다. 약 2년 전부터 발병하여 부산 메리놀병원 신경과(古김상욱 교수님이 당시 과장으로 근무)에서 진료를 받다가 연고지 관계로 본원으로 전원 되었지요. 전원 당시 벌써 인투베이션 상태로 오셔서 응급실 통해 중환자실로 바로 입원을 하였는데 당시에는 스테로이드와 메스티논 만으로 거의 치료를 해가야 했죠. 약 11개월간 일반 병실과 중환자실을 오가면서 입원을 하였는데 중간에 Crisis도 몇 번 오고 흉선종 제거 수술도 하고 또한 폐결핵이 겹쳐서 마산 요양병원을 거치기도 하였죠. 처음 보는 중증 근무력증 환자였고 거의 모든 증상들을 다 가지고 있어서 당시 Myasthenia gravis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고생도 많았고요.

기억에 남는 제자는 딱히 누구를 꼽을 수는 없겠지만 모두가 잘 따라주었고 열성적으로 수련하고 지금 자리들을 잡고 있는 것 같아요. 옛날부터 타 학부의 교수들이 우리 의과대학교수를 만나면 항상 부럽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의과대학 학생들은 모두 착하고 선생을 잘 따르고 졸업 후에도 지속되어 제일 보람이 있어 보인다고요. 하나 재미있는 일은, 물론 신경과를 택하게 된 연유가 다 있겠지만, 제가 전임강사 시절에 4학년 졸업 사은회에 참석했을 때입니다. 당시 큰 원형 테이블에 학생 7-8명과 둘러앉아 식사하고 술도 한잔하면서 담소 중에 제가 불쑥 졸업생들한테 앞으로 무슨 과를 하려 하느냐고 물었죠. 왼쪽에서 돌아가면서 대답들을 하는데 가장 마지막에 앉아 있던 한 학생이 신경과라고 얘기하더군요. 그 후 별생각 없이 지냈는데 그 학생이 인턴 수료 후 본과를 선택하더군요. 약 30년 전 일이죠. 근데 최근에 와서 그렇게 대답을 하게 된 이유가 자기 앞의 학생들이 아무도 신경과를 하겠다는 사람이 없어서 였다고 실토를 해서 크게 한번 웃었습니다.

저는 교직생활을 하는 동안 학생들과의 시간을 매우 좋아했습니다. 등반 대회, 사은회, 체육대회 등을 거의 모두 참석을 하고 졸업 여행에도 몇 차례 동행을 하며 또한 학생담당 학장보도 맡았었지요. 중창 동아리 지도교수도 10년 정도 하고요. 그중에서 처음부터 마음먹고 진행해 온 게 바로 전학조 모임이었습니다. 매년 학년 별로 1-2명의 학생들을 맡게 되는데 저는 최소한 분기별로는 모임을 가졌습니다. 여름 방학에는 1박2일로 캠핑 MT를 가고요. 이제는 전국 각지로 흩어져 활동 중인데 3년 전에는 30주년 기념행사를 금강 변에서 1박2일로 가지기도 했습니다.



input image    하정상 교수님께서 요즘 관심 있는 분야는 어떤 것인지요?


오래전부터 교실의 전임교수도 늘고 말초신경 및 근육질환 분야를 전공하는 교수도 생겨서 각 교수들의 전공 분야에 따라 우선적으로 환자를 맡겨주다 보니 저는 외래에서 주로 어중간하고 애매한 환자들을 많이 맡게 되었지요. 그저 단순히 ‘머리가 아프다, 어지럽다, 팔다리가 저리다, 힘이 빠진다’ 등 말입니다. 우리 전문의들은 자기 분야에서는 깊이가 있을지 언정 폭은 좁아 자기가 가진 지식만 가지고 어떤 기준을 정해 놓고 그 범주에서 벗어나면 모두 별다른 이상이 없다고 얘기해 줍니다. 이럴 경우에는 신경과적인 원인뿐만 아니라 타과적인 요인이 있는지 살펴보고 모두가 정상이더라도 좀 더 귀 기울여주고 약물에 의존하기보다 Reassurance가 매우 중요하고 효과적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향후에도 모든 과의 consultant 역할을 하는 neurologist 로서의 방향을 더 홍보하고 넓혀갈 계획입니다.



input image    교수님의 정년 후의 삶은 현재 남은 교수들뿐만 아니라 다른 신경과 의사들도 궁금해합니다. 향후 계획이 어떻게 되시는지요?


올 초에는 8월 퇴임을 앞두고 여러 계획들을 세워 보았지만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집과 병원만 오가다가 정년퇴임을 맞게 된 것 같습니다. 퇴임 후 현재 기간제 임상교수로 계속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우선 1년 정도 더 근무를 하겠지만 내년에는 어떻게 될지는 아직 정해진 게 없습니다. 향후 신경과가 없는 중·소 종합병원에 신경과를 개설해보려 노력 중이고,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자그마한 오피스를 차려서 주변 타 의원들의 consultatant로의 길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누구 마음이 맞는 후배 선생과 같이 시간적 여유도 좀 가지면서 하면 더욱 좋겠죠.

100세를 넘긴 철학자 김형석 교수께 기자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언제가 가장 행복한 시기였습니까?”라고 묻자 그분은 60대였다고 답하셨답니다. 이제는 교수가 아닌 neurologist로서의 다른 길을 가게 되겠지요. 그리고 시간을 할여해서 아내와 등산, 골프, 쇼핑도 자주 하고 미국, 서울 등에 외손자들도 보러 자주 갈까 합니다.



input image    마지막으로 후학들에게 특히 신경과 의사의 길로 들어선 전공의들에게 멋진 신경과 의사가 되기 위한 당부의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제가 수련을 받던 당시는 주변 환경이 모두 열악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매우 보람을 가지고 일할 수 있었던 복받은 세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Brain CT 찍으러 환자를 앰뷸런스에 태워서 외부에 다녀오기도 하고 레지던트 1년차 때에도 입원환자가 30여 명이어서 혼자 맡느라 하루에 잠을 2-3시간밖에 못 잤지만 항상 즐겁게 일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후배 교수, 제자들에게 우리 때 보다 요즘이 더 어렵고 힘든 것 같다고 얘기하곤 합니다. 공부해야 할 것은 더 많고 병들은 더욱 복잡해지고 다양해지고 경쟁 또한 더 심해지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항상 옆을 돌아보고 동료 의식을 가지고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져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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