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t

개원병원 소개: 고운봄신경과의원


alt


1.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경기도 광명시에 위치한 고운봄신경과의원 원장 김고운 입니다. 저는 가톨릭관동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명지병원에서 인턴과 신경과 전공의를 수료하였습니다. 이후 서울대효병원 요양병원에서 10여 년간 근무하면서 노인분들의 다양한 진료 경험을 쌓으며, 학회 및 세미나 등을 통해 다양한 공부를 놓지 않고 지내고 있었습니다. 이 배움의 모든 것을 통해 노인뿐만 아닌 전연령의 진료를 접하기 위해 개원의 길로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2. 개업을 하신 계기가 있나요?

오랜 기간 동안 요양병원에서 신경과 전문의로 노인질환 및 만성질환과 루게릭병 등 신경계통의 환자를 관리하며 지냈습니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신경과 전문의를 찾아서 외래를 보러 오시는 분들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고, 오시는 환자분들은 다양했습니다. 왜 요양병원이지만 신경과 전문의를 찾아서 오게 될까라는 의구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경기도 광명시에는 1차의료기관으로서 환자들을 돌볼 수 있는 신경과가 없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신경과를 사랑하고 전공한 저에게는 지역사회에 신경과를 알리고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점점 노인인구의 증가와 신경학적 질환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두통, 어지럼, 스트레스, 불안, 우울증 및 기타 신경계통 문제로 고통받고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전문적인 치료 및 돌봄을 제공하여 건강하고 풍요로운 삶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도울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3. 개업하시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개원을 준비하면서 다시 폭넓은 공부를 하며 다양한 환자군에 대한 대비를 하였습니다. 과거의 지식에 더해 최신 지견을 더해 보다 좋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준비하였습니다. 세무와 노무적인 부분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외에 어려운 점은 없었습니다. 다만, 신경과를 알리기 위한 노력을 스스로 한다는 점이 솔직히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처음 오시는 분들은 신경과는 언제 오나요? 부터 어떤 증상에 오나요? 기타 흔히 아는 진료과목과 다르다 보니 이 부분을 알리고 이해 시키는데 지금도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신경과학회에서도 이런 점을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한 노력으로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만큼의 내용들로 많이 함께 해주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4. 어떤 콘셉트를 가지고 개업을 하셨나요?

현대인들에게 두통, 수면질환, 피로, 우울 등은 너무도 흔한 증상입니다. ‘힘들다’, ‘지친다’고 호소하면서도 ‘다들 그렇지’, ‘정신력이 그래서 되겠냐’ 라며 넘겨 버리는 경우도 많이들 경험 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다 흔하다고 해서 심각성이 낮은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기저에 큰 병이 숨어 있을 수도 있고, 만성질환으로 이어질 수 도 있기 때문이죠. 원인만 찾으면 쉽게 해결할 수도 있는데 큰 병원가기 부담스럽다며 혹은 어느 진료과를 가야 할지 모르겠다며 방치하기도 합니다. 이런 환자분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찾아올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고 ‘당신을 위한 신경과 주치의’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신경과’가 조금 더 가깝고 편안한 곳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개원하여 환자의 편안한 일상을 회복하는데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개원하게 되었습니다.

alt


alt


alt


5. 병원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희 병원의 평균 진료 시간은 솔직히 긴 편입니다. 심도 있는 대화를 통해 ‘진짜 원인’을 밝혀내기 위해서 입니다. 대학병원에서 하지 못한 이야기를 털어내시고 더 많은 상황속에서 있었던 통증과 기억들 말씀하시며 울기도 하고, 한결 마음을 편하게 나가시며 치료계획에 만족스러움과 희망을 가지고 돌아가시곤 합니다. 이것이 저희 병원만의 차별성입니다. 수익만을 따라가기보다 환자와 그 상태에 집중하고 치료 계획과 검사를 통해 심각한 문제를 찾아내면 주변 2차, 3차 병원들과의 협력을 통해 빠른 대응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한번은 뇌경색인줄 알고 온 환자와 보호자분들을 진료 후 뇌암을 진단하고 빠른 협진을 통해 3차병원에서 긴급 수술까지 잡아드려 빠른 회복을 도와드리며 회복 후 다시 병원을 찾아오셨을 때는 온가족이 눈물을 보이시는 모습에 저 또한 마음이 찡함을 느꼈습니다.

alt





  

    alt

충남대병원 신경과 전공의들의 슬전생


  글_최하영(충남대병원 신경과 전공의 2년차)



alt
alt





  

    alt

신경과 전공의 해외학회 탐방기
나의 2023WCN 참관기


  글_김소린(경희대병원 신경과 전공의 3년차)



참가 해외학회: (WCN 2023)World Congress of Neurology The XXVI World Congress of Neurology

23년 10월, 한창 날씨가 좋던 가을에 좋은 기회를 통해서 캐나다에서 개최되는 WCN 학회를 가게 되었다. 20시간 이상 비행기를 타서 도착한 캐나다는 옛스러운 골목 골목이 멋드러졌고 마치 유럽에 온 듯한 풍경을 연상시켰다. 첫 날 학회장에서는 흥미로운 강의 위주로 들어보자고 생각했고 첫 강의를 epilepsy 강의에 참석하였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약들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약의 selection 관점에서 언제 어떤 약을 쓰면 더 좋을 지 발표자들이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서 얘기해 주셔서 유익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점은 강의가 끝나고 나서 여러 나라 사람들이 영어 실력에 상관 없이 자신 있게 질문하는 모습이었다. 나부터도 영어를 못하면 말문이 턱 막히고 나서기가 쉽지 않아 소극적으로 살아 왔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것들에 개의치 않고 토론하는 모습을 보면서 앞으로 더 이상은 이렇게 살지 말아야지 하는 다짐을 했다.


alt


캐나다는 여러모로 정말 아름다웠다. 특히 단풍이 지는 시기여서 공원에서 보는 호수의 풍경이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다. 나무 밑에 앉아 있으면 다람쥐들이 조용히 옆으로 와서 두리번거리다가 떠나는 모습이 아주 앙증맞았다.


alt


중간에 하루 여유를 잡아 근교에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특히나 도깨비로 유명한 곳, 퀘백을 다녀왔다. 드라마에 나왔던 호텔부터 빨간 문까지, 어디선가 공유가 성큼 나올 것만 같았다. 몽모랑시 폭포도 잠시 들렸는데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는 스케일의 폭포를 살아 생전 처음 봐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alt


전공의가 된 이후, 코로나 시기로 인해서 해외로 여행을 가는 것도 쉽지 않았고 특히나 해외 학회는 가 본 적이 없었는데 신경과 학회에서 좋은 기회를 주셔서 인생에서 정말 좋은 시기에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앞으로 다른 후배 전공의분들도 이런 좋은 기회를 통하여 꼭 나와 같은 좋은 경험을 하길 바란다.







  

    alt

Caffe B;rain
바라니, 노벨상을 받은 포로


  글_박지욱(제주 박지욱 신경과의원)



[※이 글은 일종의 팩션(faction; fact+fiction)입니다.]


때; 1915년 연말(추정)
곳; 중앙아시아의 Merv(현재 투르크메니스탄), 러시아군에 생포된 오스트리아군인들의 포로수용소


- 소장님 급히 보고드릴 것이 있습니다.
- 무슨 일이요, 군의관?
- 우리 포로수용소에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가 진료를 봐주러 온다면 어찌하실 겁니까?
-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그 무슨 소리요?
- 먼저 어찌하실 것인지 말해주십시오
- 아니 노벨상 수상자라면 세계 최고의 의사일 텐데 이런 허접한 포로수용소에 올 턱이 없지 않겠소?
- 그래도 만약 온다면요?
- 당연히 내가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예우로 모시고 진료하시도록 도와드려야지. 안 그래도 환자는 많고 의사는 부족한데...
- 그럼 그렇게 하시는 걸로 믿고, 노벨상 수상자를 제가 책임지고 모셔오겠습니다!
- 장난 아니죠?
- 네, 소장님.

(잠시 후)

- 소장님, 모셔왔습니다.
- 누구 말이요? 안 보이는데.
- 이 분입니다… 자기소개를 하세요, 바라니 박사!
- 네, 저는 오스트리아군 포로 로베르트 바라니(Robert Barany;1876-1936)입니다!
- 이 사람이 노벨상 수상자라고? 지금 장난치는 거요, 군의관?
- 아닙니다. 바라니 박사, 계속하세요!
- 네, 저는 비엔나 대학교 병원의 귓병 클리닉에서 의사로 일하다 전쟁(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군의관으로 자원입대해 부상병들을 돌보다 (1915년) 4월에 생포되어 이곳에 수감 중입니다.
- 이 사람이 노벨상하고 무슨 상관이오, 군의관?
- 소장님 놀라지 마십시오. 이 분이 올해 발표된 노벨상 수상자입니다.
- 뭐라고? 정말이오?
- 네. 맞습니다. 지난 10월에 1914년(작년) 수상자로 발표했는데, 전쟁 중이라 다들 수상자의 행적을 모르고 있었나 봅니다. 그런데 제가 신문을 보고 이름이 익숙하다 했습니다. 그래서 혹시나 하고 확인해 보니, 정말 우리 포로수용소에 있는 그 사람인 것 아닙니까!
- 오 그래요! 듣던 중 반가운 이야기요. 자 여기 앉아요 바라니씨. 아니 바라니 박사. 비록 포로의 몸이긴 하지만 이제 우리를 좀 도와주시오. 그래 전공이 뭐라고 했소?
- 귀 전문입니다.
- 그럼 우리 군의관하고 상의해서 우리 러시아군들 중 이비인후과 환자들 진료 좀 해주시오. 당신 조국 오스트리아군 포로들을 진료도 해도 좋소.


이리하여 포로수용소에 갇혀 있던 로베르트 바라니는 수용소의 군의관을 통해 자신이 노벨상 수상자가 된 소식을 알게 되었다. 수용소에서 바라니는 이비인후과 진료를 도맡은 건 물론이고 지역의 시장(市長)과 그 가족들을 치료해 주기도 했다. 시장은 바라니를 집으로 자주 불러 저녁도 함께했다. 중앙아시아의 작은 도시 시장 중 노벨상 수상자와 식사를 자주 할 수 있었던 사람이 또 있었을까?





alt

▲ 로베르트 바라니(1939년)


▶ 사진 더보기alt




사진은 포로수용소에서 석방 직전의 바라니. 가운데 앉아 있다. 대우를 잘 받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바라니는 당장 석방되진 못했다. 스웨덴의 과학자들, 스웨덴 왕자, 국제적십자가 나서 그의 송환을 요구했고 결국 러시아 차르 니콜라이 1세의 사면을 받아 1916년에 석방되어 비엔나로 돌아갔다. 귀국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바라니는 비엔나에 살지 못한다. 마침내 자신에게 노벨상도 주고 수용소에서 구원해 준 스웨덴으로 떠난다. 웁살라대학교(Uppsala University)의 이비인후과 과장 자리를 수락했고 여생을 스웨덴에서 보냈다. 덕분에 노벨상 이후의 본격적인 어지러움 연구는 스웨덴 의사들과 함께 했다.

BPPV 진단에 널리 쓰이는 Nylén- Barany 검사(혹은 Dix-Hallpike 검사)에 함께 이름이 남은 칼-올로프 닐렌은(Carl-Olof Nylén; 1892~1978)은 스웨덴의 이비인후과 교수이자 테니스 선수이다. 닐렌은 홀파이크(Charles Skinner Hallpike; 1900~1979)와 함께 1960년에 바라니 학회(Barany Society)를 세웠다. Dix-Hallpike 검사에 이름이 남은 찰스 홀파이크는 영국의 이비인후과 의사이다. 마가렛 딕스(Margaret Ruth Dix; 1902~1991)는 퀸스 스퀘어(The National Hospital for Neurology and Neurosurgery in Queens Square; 내셔널 호스피탈 혹은 퀸스 스퀘어로 줄여 부른다)에서 일한 영국의 여류 신경-이과학자(neuro-otologist)이다.

어지럼증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라면 하루에도 여러 번 할 수밖에 없는 닐렌-바라니 검사법, 이렇게 간단한 진단법을 확립한 바라니와 그의 고단했던 삶을 한 번쯤은 기억해 주시길 바란다.



SNS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