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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식신경과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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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남양주 다산에서 박용식 신경과 의원에서 일하고 있는 박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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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개업을 하신 계기가 있나요?

공중보건 의사를 마치고 분당서울대 병원에서 neuromuscular part 전임의 과정을 마치고 소위 말하는 강호의 세계로 취업을 하였습니다. 제가 봉직을 한 곳은 흔히들 말하는 척추 관절 병원으로 병원에서 저의 주요 역할은 정형외과와 신경외과에서 시술/수술 전에 pre-op 과정에서 행해지는 근전도를 포함한 전기생리학적 검사를 시행하고 이따금씩 병원과 협약을 맺은 병원에서 오시는 치매 환자분들을 진료하는 일에 국한이 되어 있었습니다. 신경과 영역, 그중에서도 타과의 업무에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수동적인 생활을 1년여 이상 해오다 보니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하던 차에 만약에 내 병원이라면 이렇게 할 텐데..라는 꿈을 키웠던 것 같습니다. 이런 환자들에게는 이렇게 진료를 하고 공간 구성은 이렇게 했을 텐데 하며 구체화되지는 않았지만 대략적인 청사진을 그리며 지내던 중 소아청소년과 지인의 이전 개원 자리를 같이 알아보던 중 덜컥 저도 그 아래층에 개원을 하기로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있더군요.


3. 개업하시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많은 신경과 선생님들께서 아마 공감하시고 이 때문에 학회 차원에서도 많은 노력을 하고 계신 문제로 생각이 되는데, 현실적으로 낮은 신경과에 대한 인지도가 가장 큰 어려운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신경과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은 Grey 함이라고 저는 생각하는데, 경우에 따라 신경외과, 재활의학과, 정신건강의학과, 내과 그리고 통증의학과에서 하는 일들을 신경과 선생님들은 충분히 할 수 있지만 결국에는 낮은 인지도로 인해 일차적으로 다른 과를 찾는 게 엄연한 현실이기도 합니다. 현재 만 4년 차가 도래하고 있으나 아직까지도 이러한 편견과 싸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습니다.

또한 현실적으로 사업체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는 역시 인사 문제, 즉 직원 문제인 것 같습니다. 주인이 아닌 사람에게 주인 의식을 기대하지 말라는 말이 있지만, 막상 내 마음 같지 않은 직원들을 대할 때 마음이 많이 상하고 기대한 만큼 실망도 많이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물론 이 또한 현재 진행형의 어려움이기도 하고요.

제가 일하고 있는 남양주 다산의 경우 신도시로 처음 개원을 했을 2019년 당시에는 아파트 몇 단지와 상가 건물 몇 개만 들어선 상태로 소위 말하는 아스팔트도 채 깔리지 않은 맨땅에 헤딩을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출근 전에 주변 병/의원에 병원 홍보 자료를 갖고 방문해서 영업(?)을 직접 몇 개월 동안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외에서 마트, 아파트 출입구, 버스 옥외 광고를 포함한 오프라인 마케팅과 블로그, 병원 홈페이지 제작 및 유튜브 방송 촬영 등 온라인 마케팅을 같이 병행하였는데, 그 누구도 마케팅에 대한 교육을 받아본 일도, 또 그동안 관심도 가져본 적 없던 터인지라 정말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면서 몸소 세상과 부딪혔던 것 같습니다.


4. 어떤 컨셉을 가지고 개업을 하셨나요?

신경과 전공의 수련 과정에서부터 neuromuscular part에 관심이 많았으며, 초음파 영상에도 관심이 많아서 전임의 그리고 봉직의 시절에도 초음파 관련 워크숍을 주말마다 찾아다니며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근전도 검사를 하면서 어느 정도 해부학적 지식에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 초음파를 접하면서 얼마나 큰 자만이었는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한 초음파를 기반으로 한 근골격계 통증 치료가 C-arm처럼 방사선 노출이 없이도 통증 조절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음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정형외과나 한의원 등을 거쳐오신 분들에게 통증의 원인에 대한 감별을 신경과에서 행할 수 있는 검사들을 통해 설명드리고 나아가 제가 할 수 있는 영역 내에서 통증 치료를 하는 점에 중점을 두고 도수치료를 포함한 물리치료실을 운영하는 의원으로 개원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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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병원 소개 부탁드립니다.

바른 진료, 인술을 펼치는 의료진, 사람 냄새나는 병원이라는 가치하에 2019년 2월 18일 남양주 다산에 개원하였으며, 신경과에 대한 저변을 넓히며, 아울러 신경과의 장점을 통해 진료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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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부족하지만 저에 대한 글을 써보았습니다
덕분에 그동안의 시간을 돌이켜 볼 수 있어 새삼 좋은 시간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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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전공의 생활
경희대병원 신경과 전공의들의 슬전생


  편집_김태우 (경희대병원 신경과 전공의 3년차)



  R3 김태우 전공의 


대학생 때부터 자전거를 좋아했습니다. 20대 초반에 10만원 대 삼천리자전거로 전국 일주를 하기도 했습니다. 당시에는 자전거도로가 전국에 깔리기 전이라 국도로 다녔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무모한 도전이었네요. 과외비를 모아서 좋은 자전거를 장만했는데 몇 달 타지도 못하고 도난당했던 슬픈 기억이 있습니다. 이후로 아주 오랜 기간 자전거는 저에게 봉인된 취미였습니다. 그러던 중 반년 전부터 다시 자전거를 타고 있습니다. 전공의 3년차가 되면서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시간이 날 때마다 중랑천 옆 자전거길을 달립니다. 연휴에는 가평에서부터 서울까지 돌아오는 약 80km의 코스에도 도전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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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강 자전거길에서


1, 2년차때는 병원 본관6층의 당직실을 이용했는데 3년차가 되면서 17층 꼭대기의 당직실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좋은 점은 당직실 문을 나서면 바로 병원 옥상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업무를 하다가 쉴 때 옥상으로 나와 햇볕을 쬐고 찬 공기를 마시면 기분 좋게 환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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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원 옥상에서 보이는 경희대 캠퍼스와 회기동 전경. 저 멀리 잠실 롯데월드타워도 보인다.


최근 저에게 신경과 전공의의 역할만큼 커진 것은 아빠로서 사는 것입니다. 육아가 부업이자 최대의 취미생활이 됐습니다. 이제 33개월인 딸은 말도 곧잘 하고 애교가 참 많습니다. 퇴근하고 집에 가면 “아빠~~~” 하며 달려와 안기면 모든 피로가 눈 녹듯 하다가도 자정까지 잠에 안 드는 아기와 노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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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근 후 딸과 놀아주는 중. 육아퇴근은 언제…


여러 파견과 순환근무를 마치고 오랜만에 경희대병원 신경과 전공의가 모두 모여서 최근 회식을 하였습니다. 힘든 업무와 당직 중에도 각자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서로 돕는 모습이 참 보기 좋은 우리 전공의들입니다. 한 달 뒤면 새로운 1년차들이 들어오는데 다 같이 힘내서 수련 기간을 잘 마치면 좋겠습니다.

  R3 하수현 전공의 


바쁜 1, 2년차 전공의 생활을 마치고 3년차에 접어들어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과 나를 즐겁게 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고, 이전과는 달라진 제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어릴 적에는 부모님께서 등산을 가자고 하시면 절대 가지 않겠다고 버티고는 하였는데 문득 산을 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친구들과 등산 모임을 결성하였고, 서울 시내 산들을 하나씩 정복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산을 오를 때 힘들게 땅만 보고 걸었던 기억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친구들과 오이 하나씩 들고 걸으면서 멋진 풍경 앞에서 사진도 찍고, 하산하여 맛있는 음식으로 마무리를 하니 좋은 추억들이 많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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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지난 2년간 당직을 서면서 체력적인 한계를 많이 느꼈는데, 원래는 운동을 좋아하지 않아서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다가 등산을 하면서 건강하고 활기차게 지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필라테스도 시작하였고, 날씨가 좋을 때는 한강변 러닝을 즐겨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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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날수록 일과 개인적인 생활의 균형을 잘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신경과 의사로서 걸어갈 긴 여정에 힘든 점도 있겠지만 제 자신을 잘 돌보고 좋아하는 것들을 함께 하면서 행복하게 지내고 싶습니다. 모두들,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씩 발견하는 기쁨을 누리기를!

  R2 김소린 전공의 


경희의료원 신경과를 들어온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벌써 2년차의 끝자락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지난 2년을 돌이켜보면 정말 힘들기도 했지만 좋은 주변 동료들, 친구들이 함께 해서 잘 버텨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전공의 생활하면서 여러 취미생활로 스트레스를 해소해왔는데요. 그중에 하나가 ‘식물 키우기’입니다. 하나 둘, 사 모으다 보니 벌써 식물 식구가 20개가 훌쩍 넘는데요. 다른 친구들은 약속 있다고 바삐 퇴근할 때 저는 ‘집에 식물들 물 줘야 해!’ 하고 당직 후에 허겁지겁 퇴근하곤 합니다. 잘 모르는 분들은 맨날 똑같은데 무슨 재미가 있냐고 하실 수도 있겠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매일 조금씩 성장하고 새 잎을 내는 모습을 볼 수 있고 또 천천히 그 과정을 기다리는 재미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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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저의 전공의 생활을 버티게 해주는 것은 저희 집 고양이입니다. 아는 친구가 잠깐 맡긴다고 했다가 키우게 된 지 벌써 10년이 돼가는데요. 주말에 함께 누워서 낮잠을 자다 보면 지금까지 받았던 모든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느낌이 듭니다. 병원에서 여러 업무로 스트레스가 쌓이신다면 집에서 식물이나 반려동물을 키워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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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2 문대철 전공의 


먼저 경희대병원 신경과 의국원으로 전공의 생활을 소개하게 되어 기쁩니다. 저는 현재 두 아이의 아빠이자 레지던트 2년차로 바쁜 생활을 보내고 있지만 가족과 동료들의 든든한 지원 덕분에 보람 있게 전공의 생활을 보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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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외로 나가 한적한 야외카페에서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을 좋아합니다.


요즘 저의 일상은 병원과 육아로 가득 차 있지만 항상 의미 있게 시간을 보내려고 합니다. 여가시간에는 집에서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지만 가능한 야외로 나가는 것을 좋아하며 새로운 야외 카페나 레스토랑을 탐색하는 것도 좋아합니다. 아이 둘을 데리고 다녀야 하기에 키즈 프렌들리 카페나 레스토랑에도 예민한 편입니다. 각박한 일과 속에 문화생활의 일환으로 아이들이 잠들었을 때만 설치되는 특별한 영화 감상 코너를 마련하기도 하였습니다. 늦은 밤, 육아 퇴근 후 나누는 아내와의 담소도 소중한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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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장구 치며 좋아하는 모습입니다.


저년차 신경과 전공의 생활은 이따금 능력의 한계치를 시험하는 때가 오는데, 항상 친절하고, 인간미 넘치는 가족 같은 동료들 덕분에 버텨나갈 수 있었습니다. 이런 동료들을 만날 수 있어 행운이라 생각합니다. 일터에서 동료들과 일상을 공유하고 대화하는 시간 또한 제게 매우 소중하며 긍정적인 에너지로 작용합니다.

앞으로도 훌륭한 의국의 일원으로 자부심을 갖고 신경과 전공의로서도 계속 성장하고 배우며 그동안 받기만 한 고마운 의국에 많이 베풀 수 있는 전공의 생활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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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끄럼틀을 눕히면 홈시어터(?)가 만들어집니다



  R1 윤현수 전공의 


‘슬기로운 의사 생활’이라는 드라마에서 표현되었듯이, 처음으로 주치의로서 환자를 맡아 치료하기 시작하는 전공의 시기는 의사 생활 중 가장 힘들고 고된 시기로 묘사되곤 합니다. 특히 일이 손에 익지 않고, 버거운 당직 근무도 많이 서야 하는 저년차 시기는 더욱 힘들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늘 수면 시간이 부족하기에 여유가 생겨도 학생 시절에 누리던 다양한 취미 생활을 뒤로하고 침대에 누워 바로 잠들기 일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공의 생활을 하며 유지할 수 있었던 취미 생활 중 하나는 독서입니다. 근무를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마주하고, 때론 부딪히기도 하면서 감정을 많이 소모하는 날도 있었고, 내일은 또 얼마나 힘들지, 걱정을 한껏 안고 잠자리에 드는 날도 있었습니다. 독서를 하며 이런 감정들을 다스리며 정리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저의 소중한 취미 생활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침대 옆 스탠드 하나를 켜두고 독서를 통해 하루를 정리하며, 안온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감정의 정리와 불안을 다스리기에 참 좋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디까지나 취미로 독서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저는 다양한 분야의 독서를 하기보다는 제가 좋아하는 소설을 주로 읽습니다. 소설 중에서도 특히 장르물을 자주 읽는 편인데, SF 소설을 특히 좋아합니다. ‘테드 창’, ‘김초엽’이라는 작가를 좋아하는데, 그들이 보여주는 따뜻한 상상력은 저의 지평을 넓혀주는 듯한 느낌을 주고, 한편으로는 편안함을 가져다주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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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 나오는 다양한 인물들의 다양한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해 노력도 해보며 제가 만나는 사람들의 입장을 생각하는 연습을 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전공의로서의 일은 비단 약을 주고 시술을 하며 물리적인 치료를 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환자가 어떻게 하면 안심할 수 있고, 퇴원을 해서도 잘 살아갈 수 있을지를 생각하는 일이기 때문에 책을 읽는 것이 이런 과정에 도움을 준다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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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독서를 한다면, 생각을 비우기 위해서 하는 저의 다른 취미 활동은 운동입니다. 예전만큼 자주 하지는 못하지만, 저는 한강변 도로에서 뛰는 것을 정말 좋아합니다. 병원 생활을 하다 보면 계속 병원 안에만 있게 되기 때문에 바깥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날도 많고, 심지어 하루의 날씨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날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깥공기를 맞으며 운동을 하는 시간이 꼭 필요합니다. 바깥공기를 맞으며 아무 생각 하지 않고 달리다 보면 답답했던 마음이 조금씩 해소되는 듯하고, 환기가 되는 기분이 듭니다. 달리다가 멈춰 한강의 밤하늘이나 야경을 보면, 제가 했던 걱정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느껴지는 순간들도 있습니다. 하루 종일 앉아서 일을 하다가, 1~2시간 정도 운동을 하는 것이 몸과 마음을 다스리고 활력을 불어 넣는 역할을 해주는 것 같습니다.

전공의 생활을 하며 충분한 개인 시간을 갖기 어렵고, 힘들고 서러운 날들도 많지만 이를 이겨낼 수 있는 작은 취미 활동들이 보다 슬기롭게 힘든 시간들을 견뎌내는 것에 도움을 주는 것 같습니다.

  R1 송배섭 전공의 


꿈과 희망을 가지고 들어온 신경과였지만, 모든 일들이 처음이다 보니 많이 어리숙하고 힘들었던 1년차 생활이었습니다. 하지만 교수님들과 윗년차 선생님들 덕분에 조금씩 배워나갔고 일이 손에 잡히기 시작하였습니다. 전공의 생활에 적응할수록 개인 시간도 늘어나서 처음에는 정신없이 하루를 보냈지만 현재는 퇴근 후 간단한 취미 생활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원래 여행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데, 전공의 특성상 거창하게 여행 다니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조금씩 시간을 내면서 가족들끼리 여행을 다녀왔는데 이러한 시간들이 힘든 일상들로 기운 빠진 저에게 재충전의 시간으로 다가왔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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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특히 바닷가로 가는 것을 좋아하는데 파도 소리와 넓게 트인 바다를 보면 그동안의 스트레스가 풀리는 느낌을 받습니다. 얼마 전에는 보령시에 있는 오천항이라는 곳을 다녀왔는데 오랜만에 느끼는 바닷바람과 병원이 아닌 다른 장소에 있다는 생각이 마음을 시원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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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ffe B;rain


퍼킨제? 푸르킨제? 푸르키녜?

  글_박지욱(제주 박지욱 신경과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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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 에반젤리스타 푸르키네. Wikipedia 자료.


물질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원자(atom)이다. 그렇다면 생물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세포(cell)이다. 세포는 생명체를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구성 인자이고, 세포에서만 세포가 생긴다는 <세포론(cell theoty)>은 지금은 상식 중의 상식이지만 그 사실이 확립된 것은 불과 160년여 전인 1858년의 일이다. 세포론의 성립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이 바로 뇌세포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푸르키녜가 발견한 소뇌 세포다. 우리가 푸르키녜 세포(Purkinje cell)라 부르는 바로 그 세포다.
얀 에반젤리스타 푸르키녜(Jan Evangelista Purkyne)는 1787년에 지금은 체코 땅이지만 당시에는 오스트리아가 지배하던 보헤미아왕국에서 태어났다. 그의 이름은 체코어로 Jan Evangelista Purkyne이지만 독일어로는 Johann Evangelist Purkinje가 되었다. 체코어나 독일어식 발음은 [푸르키녜]가 맞겠지만 영어식으로는 [푸르킨제] 혹은 [퍼킨지]로 불리고 있다.
푸르키녜는 수도원 부설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수도회에 입회한다. 하지만 20세(1807년)에 수도원 생활에 답답함을 느끼고 탈퇴한 다음 300km를 걸어서 프라하로 간다. 프라하에서 처음에는 철학 공부를 시작했는데 형편이 어려워 가정교사를 하며 학비와 생활비를 벌었다. 하지만 가르치던 학생의 아버지가 그를 눈여겨 보아 학비를 지원해 주었고 26세(1813년)의 늦깎이로 프라하대학교 의대에 입학한다.
학생 시절 때부터 자신을 기니피그 삼아 생체실험을 하는 등 연구에 열의를 보였다. 덕분에 벨라돈나(아트로핀) 같은 위험천만한 약물을 직접 체험하고 환각을 겪기도 했다. 31세(1818년)에 의대를 졸업한다. 36세(1823년)에 지금은 폴란드 영토이지만 당시에는 프로이센 영토인 브레슬라우대학교 교수로 임용된다. 이후로 26년 동안 브레슬라우(폴란드어로 브로츠와프)에서 연구자로 전성기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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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슬라우(브로츠와프)대학교, 19세기. Wikipedia 자료.
브람스가 <대학축전 서곡>을 헌정한 곳이 바로 이 대학이다.


그의 관심사는 다양했다. 생리학은 물론이고 광학 연구도 했다. 특히 그의 연구에는 현미경이 중요했다. 1837년에 푸르키녜는 제자인 발렌틴(Gabriel Valentin)과 함께 소뇌에서 동그란 세포체/소구체(corpscule) 와 섬유들(fibers)로 이루어진 세포단위를 발견한다. 오늘날 우리가 푸르키녜 세포라 부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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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까할이 그린 소뇌의 푸르키녜 세포 (우) 그레이 아나토미에 묘사된 소뇌의 푸르키녜 세포. Wikipedia 자료


이듬 해인 1838년에 레마크(Robert Remak)는 섬유들 하나하나가 동그란 세포체/소구체들 중 하나와 연결된 것을 발견한다. 몇 년 후에 슈반(Theodor Schwann)이 <세포론>을 다듬을 때 푸르키녜의 발견을 중요한 밑거름으로 삼는다.
푸르키녜는 63세(1850년)에 다시 프라하로 돌아온다. 여전히 게르만 영향권에 있던 이 도시에서 그는 체코어로 강의를 하고 외국어 문학작품을 모국어로 번역하는 등 체코 민족문화에 관심을 가진다. 아울러 학술지를 창간하고 신문 편집장으로 일했으며 정치 활동도 했다.
지금은 신경과 의사들이나 그 이름을 기억하고 있지만 그는 당대에 가장 유명한 과학자 중 한 사람이었다. 워낙 유명해서 그의 주소를 모른다 해도 ‘유럽에 있는 푸르키녜 박사’라고만 써도 편지가 갈 정도였다. 괴테나 바그너와도 우정이 돈독했다고 한다. 오늘날 그의 이름은 소뇌 외에 광학, 달 분화구, 소행성에도 남아 있다. 푸르키녜는 81세(1869년)에 세상을 떠나 프라하에 묻혀있다(Prague Vysehrad National Cemetery in Vysehrad,). 프라하에 가는 신경과 의사들은 한번 찾아가 볼 곳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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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에 있는 푸르키녜 크레이터. Wikipedia 자료.



**참고문헌**
1. Neurological Eponyms/edited by Peter J Koehler, George W Bruyn, John MS Pearce/Oxford University Press/2000
2. Origins of Neuroscience; A History of Explorations into Brain Function by tanley Finger/Oxford University Press1994
3. 의학명에 이름을 남긴 사람들/김옥화 지음/여문각/2006
4.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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