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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청춘신경과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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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2022년 5월 청춘신경과 문을 연 김수연입니다.


2. 개업을 하신 계기가 있나요?

서울에서 전공의, 전임의 생활을 하고서는 광주지역으로 내려와 봉직의 생활을 10여 년을 하다 개인적인 일로 그만두면서 코로나 때 잠시 미국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코로나로 국내도 힘들었지만 미국에서 모든 가게가 그대로 문을 닫는 셧다운이라는 생활도 겪어보고 어느 정도 코로나가 완화되면서 여유로운 생활도 해보고 귀국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봉직의 생활을 해볼까 했지만 근거리에서 자리 구하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개업 쪽으로 선회해서 알아보다가 개인 의원 계약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3. 개업하시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누구에게든 첫 도전은 쉽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저 역시 연속성이 없는 시점에서 개업이어서인지 개업 때도, 지금도 힘든 점은 환자 유치라고 생각됩니다. 먼저 자리를 잡으신 선후배님들이 대단하다 느껴지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종합병원에서 근무할 때는 그냥 환자분들이 신경과를 방문하는 게 너무 당연하다 생각했는데 1차 의원으로서의 신경과는 일반인들에게는 이렇게 낯선 곳이고 높은 장벽이구나 실감하는 요즘입니다.


4. 어떤 컨셉을 가지고 개업을 하셨나요?

환자분이 청춘신경과 진료실 들어와서 하시는 첫마디가 여자 원장님이셨네요 할 때가 있습니다. 간판에 보이는 청춘신경과를 보면 나이가 좀 있는 남자 선생님이 떠오르는 것 같긴 합니다. 질문 내용이 ‘어떤 개업 컨셉을 가졌냐’였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냥 봐왔던 질환인 신경과 진료를 본다’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만 개업 준비하면서 청춘이라는 글자에 제가 꽂혔다고 해야겠지요. 자꾸 나이 들어가면서 생기는 질환을 많이 다루는 과이다보니 젊은 시절 건강함으로 되돌려보고자 하는 소망이 있다고 해야할까요…
그래서 저희 병원의 컨셉을 정의하자면, ‘청춘 시절, 최선을 다했던 진료를 하자는 초심을 잃지 않고서 환자분들을 최대한 건강한 상태로 회춘(?)하게 만들자!’일 듯 합니다.


5. 병원 소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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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 한 명, 조무사 한 명, 임상병리사 한 명 이렇게 세 분과 함께 청춘 신경과 의원을 시작하였습니다. 대부분의 신경과 선생님들이 가지고 계시는 장비인 신경전도, 근전도, 뇌혈류검사, 경동맥 초음파 검사, 비디오 안진 검사 등을 원내에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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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저희 병원 환자 대기실에서의 사진을 첨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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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전공의 생활
강북삼성병원 신경과 전공의들의 슬전생


  글_김수민 (강북삼성병원 신경과 전공의 3년차)




“안녕하세요? 저는 강북삼성병원에서 신경과 3년차 전공의로 일하고 있는 김수민입니다. 저희 강북삼성병원은 서울의 중심, 서대문(돈의문)에 위치해 있어서 바쁜 병원 생활 외에도 취미생활을 다양하게 할 수 있어 정말 좋습니다. 저는 이번 글에서 저희 병원 생활의 재미있는 점들과 병원 외적인 공간에서의 취미생활, 특히 퇴근 후나 주말 오프에서의 놀 거리들을 재밌게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사실 병원 외적인 취미생활 얘기가 더 많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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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병원생활

저희 병원은 크게 A, B, C관 3개의 관으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이 중 A관과 C관에 무려 2개의 스타벅스가 있습니다! 사이렌 오더로 아침 스타벅스를 주문하고 맛있는 커피나 음료로 하루를 시작하다 보면 기분이 좋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스세권(스타벅스 세권)”에 있다는 사실부터 우선 하루의 시작이 상쾌합니다.
B관에는 브래댄코 (옛 호텔 신라명과)가 입점해 있어서 매일 맛있는 빵도 원한다면 마음껏 사 먹을 수 있습니다.

또한 A관과 B관을 잇는 구름다리는 탁 트인 통유리창으로 전체가 이루어져 있어, 굳이 무더운 여름이나 추운 겨울에 병원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될 정도의 개방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저희 전공의들도 물론이고 환자분들도 많이 이용하는 공간입니다. 밖으로는 방향에 따라서 병원 내의 조경도 볼 수 있고 바로 옆에 있는 돈의문 박물관 마을이나 멀리는 인왕산도 보입니다. 물론 어떨 때는 일하다 말고 그리로 가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저희는 5시 칼퇴근을 하기 때문에 조금만 기다리면 금방 놀러 갈 수 있습니다!
저희 신경과는 평일에는 1년차 선생님이 응급실을 보게 되는데요. 만약 5시까지 당직을 서면 운이 나쁜 경우 칼 퇴근을 할 수 없으니 4시에 당직 마감을 합니다. 그래서 5시 이후로는 서울의 어느 곳이든 당일치기가 가능합니다. 주말 오프도 확실한데 특히 한 달에 1번 연달아 투오프가 1, 2년차에도 꼭 지켜지고 있습니다. 이때는 서울 근교에 가기도 하고 멀리 바다를 보러 부산도 가고, 저 같은 경우에는 고향이 대구라서 대구에도 자주 가서 힐링을 하곤 합니다. 아래 사진은 왼쪽부터 FAST-ER 이유진 선생님과 저희 2년차 이소래 선생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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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FAST-ER 이유진 선생님과 저희 2년차 이소래 선생님



저희는 응급실에 Hyperacute stroke에 대응할 수 있도록 FAST-ER 선생님들이 24시간 상주하시고 계시는데요, 총 다섯 선생님들께서 3교대를 하시고 저희 전공의들과 매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서로 도우면서 일하고 있고, 제가 1년차되던 해에 시작된 제도가 이제 상당히 자리가 잡혀서 hyperacute stroke에서만큼은 국내 탑 5내에 들 수 있다고 자부합니다. 사진에서도 무언가를 열심히 토의하시고 계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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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저희 신경과 이준오 PA 선생님께서도 합류하신 모습입니다. 대단히 화기애애해 보이죠? 이제 저희 1년차 선생님이 등장할 차례가 되었네요. 저희 신경과의국은 한 년차당 1명의 전공의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전공의들 간에 더 돈독해질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1년차 한상규 선생님께서는 3월과 4월의 BACK 기간이 끝나 온전히 독립을 했기 때문에 최근 매우 바쁜 삶을 살고 계십니다. 아침 컨퍼런스 발표 준비하랴 응급실 환자 보랴 병동 환자 보랴 매우 바쁜 삶을 살고 있는 선생님을 누군가가 찍어서 보내준 사진이 바로 다음 장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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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환자분에 대해 집중을 하고 있는 와중에 왼쪽에는 또다시 FAST-ER 김수종 선생님께서 함께 계시는군요. 연차별로 분업이 잘 되어 있어서 수련을 체계적으로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또 다르게 생각해 보면 혼자 일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그러면 외롭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항상 서로 편하게 토의하고 함께하실 분들이 늘 계시기 때문에 외롭지도 않고 오히려 북적북적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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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는 제 사진인데요, 마치 스머프와 같은 군청색 당직복이 계속 눈에 띄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편하고 저 색을 입는 것은 신경과/신경외과 레지던트들밖에 없어서 저희 병원 안에서만큼은 신경의 상징 같은 색입니다. 사진은 최근에 당직실이 리모델링이 되어서, 신형 2층 침대에 라텍스 푹신한 매트리스, 철저한 방음과, 절대 허용되지 않는 외풍 등등 병원 내에서도 전공의 복지를 위해 많이 노력해 주시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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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로 저희 4년차 안소이 선생님이 찍어주신 작년 추계학술대회 사진입니다. 저는 코로나가 한창일 때 1년차가 되었는지라, 이때가 저에게는 첫 오프라인 학술대회였어요. 들떴었는지 눈이 웃고 있네요 ㅎㅎ



2. 병원 주변의 볼거리들

  1) 독립문공원~서대문형무소~안산 


저는 바로 집 옆이 독립문과 이어지는 독립문 공원에 있어서 밤에 자주 달리러 나가곤 합니다. 서울 시내라고 매캐한 연기와 미세먼지를 상상하기 쉽지만, 오히려 저는 입사 이후에 이전보다 운동에 접근성이 좋아져서 더 건강해지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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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밤에 바라본 독립문과 (오)어느 겨울날 촬영한 유관순 열사 동상
‘동상 아래 누군가가 눈오리를 나란히 배열해놓았는데 그게 매우 귀여웠어요’



독립문 공원을 올라가다 보면 서대문형무소가 보입니다. 예전에 무한도전에서나 보던 곳인데, 직접 가서 참담한 일제강점기의 실상을 보고 나면 절로 숙연해집니다. 이런 역사적인 장소에 오게 되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평소에는 병원의 의료적인 요소만 생각하다가도 독립운동가 위인분들의 희생이 있기에 우리가 있구나 생각하며, 좀 더 현실에서 힘을 내고 또 현재에 감사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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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눈 내린 바닥에 커다란 태극기가 인상적이었어요.
어딘가 스산한 느낌도 드는 것이, 100여 년 전 이곳은 어땠을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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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형무소 내의 감방들인데요. 하나하나 방에 들어가면 독립운동가분들의 설명이 있는 영상 및 자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제 독립문공원을 한 바퀴 돌면 그것은 운동 코스에 불과하지만, 삼분의 이를 돌고 나면 작은 샛길이 납니다. 바로 안산으로 올라가는 코스인데요 바로 아래 사진이 그 코스입니다. 독립문에서 공원을 거쳐서 전망대를 거쳐 멈출 수도 있지만, 안산 봉수대 및 안산 정상으로 갈 수 있습니다. 물론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인왕산에 비하면 작은 산이지만, 저 같은 등린이에게는 아주 안성맞춤인 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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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린이를 위한 안산 등산 추천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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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 정상에서 바라본 광경. 고소공포증이 있는 저도 이때만큼은 와, 서울 정말 멋지다는 생각만 들었네요.




안타깝게도 저는 길치라 내려올 때는 홍제동 쪽으로 잘못 내려와서 버스 타고 귀가했습니다^^.

  2) 청계천~광화문(광장)~경복궁 


지하철 5호선에서 서대문 바로 다음 역이 광화문역 입니다. 사실 지하철을 타는 것이 민망할 정도로 가까이 있어서 보통 걸어서 갑니다. 광화문 광장 공사도 지난 가을에 끝나고 개장을 해서 더더욱 볼거리가 많아졌습니다.
퇴근을 하고 광화문으로 바로 걸어가서, 청계천 돌바닥에 앉아서 흐르는 청계천을 보다 보면, 어느덧 큰 새(비둘기가 아닌)가 한 마리씩 날아듭니다. 그러면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이 새에게로 집중되게 되는데요, 저도 자세한 새 이름은 몰랐는데 찾아보니 왜가리라고 하네요. 다음 장 사진은 제가 직접 찍은 왜가리 사진입니다. 이 녀석도 자신이 주인공인지 아는지 꼿꼿이 저를 바라보는 모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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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청계천 왜가리. 귀엽습니다/(오) 청계천에서의 한가로운 어느 오후 5시


간혹 유튜브에서 직장인 브이로그를 보면 출근하기 전 루틴으로 청계천에서 발을 담그는 무리수를 던지는 영상들이 보이는데요. 저는 차마 발을 담그지는 못하지만, 이렇게 앉아서 근처 블루보틀에서 산 뉴올리언스를 마시면서 나만의 작은 사치를 부려 봅니다. 이렇게 앉아있다 보면 해가 조금씩 기울면서 노을이 지는데 덕분에 하루의 끝자락을 더욱 이쁘게 마무리 하곤 합니다.

또 최근에 개장한 광화문 광장은 다양한 분수와 역사를 기록한 돌판, 화려한 미디어 파사드 등의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밤에는 화려한 조명으로 구성된 야경도 볼 수 있습니다. 덕분에 강북삼성병원 전공의들도 광화문 광장 개장과 더불어 문화 인프라 혜택을 더욱 누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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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광장 야경


이제 위로 쭉쭉 올라가다 보면 광화문이 나옵니다. 시간 여유가 되면 경복궁 안까지도 들어가보는데요. 어제까지는 전공의 신분이다가 갑자기 조선시대로 순간이동한 느낌이 들면서 기분전환이 상당히 됩니다. 제가 갈 때마다 비가 와서 사진은 비 올 때밖에 없어서 아쉽습니다만, 이제 곧 야간 개장 철이 다가오니 그 기회를 노려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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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정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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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경회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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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동에서 또 다시 커피 한잔의 여유



  3) 문화생활 - 교보문고, 세종문화회관, 일민미술관 


저희 과장님께서 예전에 말씀하셨던 것 중 뇌리에 박힌 말씀이 있었는데, 바로 교보문고는 책을 읽거나 공부하러 가는 곳이 아니라 놀러 가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그 말씀대로 저는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가서 읽으라는 책은 안 읽고, 재밌어 보이는 물건들이라든지 흥미로운 책이 어떤 게 나왔는지 구경하러 가는 것 같습니다. 밤 10시까지 영업한다는 점에서, 늦은 밤이라도 무언가 아쉽고 나가 놀고 싶을 때 애용하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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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교보문고


또 저희 강북삼성병원 근처에는 미술관들이 많아서 문화생활을 누리기 참 좋습니다. 일민미술관, 세종문화회관이 광화문 쪽에 있고 서울 시립미술관이 덕수궁 쪽에 있습니다. 세종문화회관에서 최근에는 “칸딘스키, 말레비치 & 러시아 아방그르드 : 혁명의 예술展” 을 보았습니다. 시끌벅적한 병원을 떠나 고요한 미술 전시를 보다 보니 마음이 상당히 평온해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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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문화회관 - 카지미르 말레비치, ‘절대주의


일민미술관에서는 “언커머셜(UNCOMMERCIAL): 한국 상업사진, 1984년 이후”라는 보다 근대적이고 어쩌면 좀 힙한 전시를 보았습니다. 여기서는 상업적인 요소라고만 생각했던 광고 사진이라즌지, 영화 포스터 등을 예술로써 감상할 수 있었고, 옛 시절의 그 감성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어 정말 좋았습니다. 제가 미술에 조예가 깊은 편은 아니라서 이렇게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는 감성이라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왔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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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민미술관 - “멋” 잡지



조금만 더 멀리 나가면 다양한 공연이나 스포츠도 관람할 수 있습니다. 먼저 첫 번째 사진은 뮤지컬 배우 고은성씨의 단독 콘서트 사진인데요, 주말 오프에 정말 귀 호강하고 왔습니다. 두 번째 사진은 가장 최근 다녀온 곳인데, 한국 프로레슬링 연합에서 주최한 프로레슬링 대회를 관람한 사진입니다. WWE 같은 엔터테이닝 성격이 강한 매치였는데요, 단순히 치고받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시나리오도 멋졌고 WWE 출신의 타지리 선수님도 볼 수 있어서 정말 재밌었습니다. 물론 한편으로는 저거 다치면 응급실 가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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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배우 고은성 콘서트에서 귀호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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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 처음으로 직관한 프로레슬링



쓰다 보니 병원 내의 생활보다 병원 외의 생활이 더 많네요. 결과적으로는 병원 내에서 병원 외 생활을 잘 보장해 주시고, 위치적으로도 서울의 노른자에 있다 보니 가능한 것 같습니다. 신경과 교수님들, 동료 전공의선생님들, PA 선생님들, 그리고 외래 및 모든 검사실 선생님들께 감사의 인사드리면서 이만 글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모두가 있었기에 3년간의 전공의 생활을 돌이켜 보았을 때 행복하고 또 잊지 못할 추억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모두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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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ffe B;rain


콘스탄틴 폰 에코노모; 하늘과 뇌에 열정을 바친 인물(1/2)

  글_박지욱(제주 박지욱 신경과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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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 에코노모. wikipedia 자료.





# 따르릉 전화가 울린다.

A: 여보세요?
B: 아, 박사님 댁이죠?
A: 네, 그런데요.
B: 아침 출근 전에 죄송합니다. 병원에서 급한 일로 박사님과 통화 좀 하려구요.
A: 아, 네, 그런데 지금은 통화가 어려운데요.
B: 급한 일인데…잠깐이면 됩니다. 바꿔 주시면 안 될까요?
A: 글쎄…그게… 조금 전에 하늘로 가셨거든요.
B: 네? 돌아가셨다구요???
A: 아니, 그게 아니고 한 바퀴 돌고 오신다고 … ‘진짜’ 하늘로 가셨어요. 2시간 후엔 돌아오십니다.



출근 전에 동네 한 바퀴가 아닌 ‘하늘’ 한 바퀴 돌고 오는 의사가 있었다면 믿기 어려운 일이지요? 그것도 100년 전에 말입니다. 물론 앞의 대화는 제가 지어낸 이야기지만 실제로 그런 특별한 재주를 가진 의사가 실제로 있었습니다. 얼른 그 이름부터 알려드리면 콘스탄틴 알렉산더 폰 에코노모(Constantin Alexander von Economo/Κωνσταντινο? Οικονομου; 1876~1931)입니다.

폰 에코노모는 1876년에 지금은 루마니아 땅에서 그리스인의 후손으로 태어납니다. 한 살 때부터는 지금은 이탈리아 땅인 아드리아해의 항구 도시 트리에스테(Trieste)에서 자랍니다. 어릴 때부터 다양한 언어와 문화를 체험하며 자란 덕분에 아버지와는 그리스어, 어머니와는 독일어, 동생들과는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로 대화를 할 정도가 됩니다.

대학은 아버지의 소망대로 기계 공학자가 되기 위해 <비엔나기술대학(Technische Universitat Wien Polytechnic; the Polytechnic University of Vienna)>에 입학합니다. 몇 년을 다니기는 했지만 문학, 예술, 자연, 여인을 사랑했던 ‘자유로운 영혼’은 기계에 붙잡히기를 거부합니다. 대신 범죄심리학에 심취해 인간의 광기와 뇌에 관심을 가집니다. 그래서 2년 만에 그만두고 유럽 최고의 명문 비엔나대학교 의대로 옮깁니다(1895년). 학교 다니는 동안에 비엔나 중심가에 있는 유명한 자허호텔(Hotel Sacher)에서 기숙했다 합니다(그는 부잣집 아들이니까요). 25세인 1901년에 학업을 마칩니다.

1903년부터 내과 수련의로 일했지만 곧 그만둡니다. 대신 이 자유롭기 그지 없는 영혼은 유럽 각지를 떠돌며 최고의 신경-정신의학자들을 찾아다닙니다. 파리, 낭시, 스트라스부르, 뮌헨, 베를린, 트리에스테에서 유학을 합니다. 2년의 해외연수(?)를 마치고 비엔나로 돌아온 폰 에코노모는 비엔나 종합병원의 신경-정신과에서 일합니다. 이렇게 의사로 자리를 잡나 싶었는데 2년 후(1907년) 다시 그의 마음을 단박에 사로잡은 것은 ‘기계’입니다. 이번에는 하늘은 나는 기계였죠.

당장 날고 싶은 그의 열망과 달리 그때까지만 해도 오스트리아에는 비행기라곤 단 한 대도 없었습니다. 라이트형제가 유인동력비행에 성공한 것이 불과 3-4년 전(1903년)의 일이었으니까요. 항공 역사가 이제 막 열리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기구(氣毬; balloon) 조종술을 배웁니다. 하지만 기구에 만족할 폰 에코노모가 아닙니다 프랑스 유학까지 가서 비행기 조종사 교육을 받지요.

조종사가 된 이상 자신의 비행기도 필요했겠죠? 당시로서는 고가의 비행기를 남에게 빌려주는 시대가 아니었으니까요. 초창기 비행기인 브와쟁(Voisin)기도 마련했고 그 비행기를 몰고 비엔나까지 날아갑니다. 이렇게 폰 에코노모는 오스트리아 최초의 조종사가 됩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 항공클럽 회장도 16년 동안 맡습니다. 한창때는 비행기도 여러 대 가졌고, 비엔나 남북에 하나씩 비행장도 만듭니다(Wiener - Neustadt 와 Aspe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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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우베 단엽기(Etrich-IV Taube monoplane), 폰 에코노모가 조종했던 기종이다. 뮌헨 도이치뮤지엄. 박지욱 사진.



하지만 비행기 조종은 일종의 취미입니다. 본업은 의사이지요. 병원 근무는 9시에 시작해 5시에 마치므로 그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 한두 시간 비행을 한 후 9시에 병원으로 출근했습니다. 5시에 퇴근하면 항공클럽에 가서 회장으로 업무 처리에 매진했죠. 항공 후발국인 오스트리아에 국제 항공 대회도 유치하는 등의 노력으로 국제 항공계의 명사가 됩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전쟁이 터집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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